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동첨(東瞻)·수이(秀而), 호는 독좌와(獨坐窩). 김시현(金時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빈(金彬)이고, 아버지는 김정상(金鼎相)이며, 어머니는 부사 이적(李菂)의 딸이다.
1726년에 사마양시에 모두 합격하고, 생원시에는 장원으로 선발되었으며, 1733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에 들어간 뒤 감찰로 나갔다가 1736년 황산도찰방(黃山道察訪)으로 나갔다가 임기가 되어 중앙으로 돌아와 낭서(郎署)가 되었는데, 이때 당하관으로 승교(乘轎)하였다 하여 처벌을 받았다.
이듬해 황해도도사가 되고, 이어 현릉령(顯陵令)을 지내다가 귀향한 뒤 효성으로 이름이 나서 충청도관찰사 서종급(徐宗伋)의 추천으로 흡곡현령(歙谷縣令: 지금 강원도 통천의 한 지명)에 제수되었다.
효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충과 믿음도 돈독하여 참의 김변광(金汴光), 교리 권세숙(權世橚)과 함께 당시 호서지방의 진신(縉紳: 관직에 있는 사대부의 총칭)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또한, 근세인의 좋은 말과 행동을 수집, 그 이름을 『문견록(聞見錄)』 이라 하고 모범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