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고법(鼓法)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본명은 김영수(金永洙). 전라남도 진도출신. 진도 설북의 명인 행언의 아들이다. 7세에서 12세까지 최두인(崔斗仁)으로부터 판소리와 남도잡가를 배웠고 12세 때에는 목포에 올라와 서편제(西便制) 판소리 명창 오수암(吳壽岩)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그뒤 영광 · 부산 · 경주 · 울산 등지를 전전 하며 판소리 사범으로 있다가 23세 무렵 서울에 올라와 한성준(韓成俊)이 이끄는 음악무용단체를 수행하였다. 26세 무렵에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에 입회하였고 여기에서 조선성악연구회 소속 창극단체 공연에 참가하였다.
조선성악연구회가 해산되자 조선창극단(朝鮮唱劇團) 공연에 참가하였고 광복 후에는 아성창극단 · 김연수창극단(金演洙唱劇團) 공연에 참가하였다.
1960년대 국립창극단이 창설되자 단원이 되었고 1980년대에는 국립국악원 자문위원으로 재직하였다.
1960년대부터 판소리 고수로 활동하였는데 일제 때 조선성악연구회와 조선창극단, 그밖에 여러 단체를 수행하며 한성준(韓成俊) · 정원섭(丁元燮) · 김재선(金在先)과 같은 명고수들의 고법에 대한 견문이 많았고, 판소리를 직접 불렀기 때문에 고수로 활동할 수 있었다.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고법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