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문 ()

역학이십사도총해
역학이십사도총해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역학도해』를 저술하였으며, 최초로 지전설을 주장한 학자.
이칭
병여(炳如)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58년(효종 9)
사망 연도
1735년(영조 11)
본관
청풍(淸風)
주요 관직
통천군수
정의
조선 후기에, 『역학도해』를 저술하였으며, 최초로 지전설을 주장한 학자.
개설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병여(炳如). 포천 출신. 증 영의정 김권(金權)의 현손으로, 영의정 김육(金堉)의 족손이며, 할아버지는 군수 김경(金坰)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숙종 때 음보로 영소전참봉에 기용되었으며, 그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726년 통천군수를 지냈다. 최초로 지전설(地轉說)을 주장했는데 경위는 다음과 같다.

일찍이 역(易)에 관심을 가지고 주돈이(周敦頤)·소옹(邵雍)·정호(程顥)·정이(程頤)·장재(張載) 등 주자학 형성에 중추적 구실을 한 사상가들의 서적을 읽어 삼라만상의 형성과 그 변화의 이치를 깨닫고, 다시 제자백가와 천문·지리학까지 읽었다.

그리하여 성리학자로서 중국 고래의 지동설, 즉 『상서고령이(尙書考靈異)』의 수직승강(垂直昇降)에 바탕을 둔 땅의 사유설(四游說)과, 수평 운동에 바탕을 둔 주희(朱熹)의 사유설 등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지전설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은 당시 청나라에서 활약하던 서양 신부 나아곡(羅雅谷: 본명 Jacques Rho)의 『오위역지(五緯曆指)』에 소개된 천체관이었다.

여기에는 프톨레미(Ptolemy,C.)의 천동설과, 지구를 중심으로 그 둘레를 달과 태양 및 항성이 회전하며 다시 태양의 둘레를 수성·금성·목성·화성·토성 등이 회전해 우주를 형성하고 있다는 브라헤(Brahe,T.)의 천체관이 소개되어 있다. 이 가운데 브라헤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지전설을 개척하였다.

즉, 태양의 둘레를 선회하는 별들이 모두 제각기 궤도를 따라 선회할 뿐만 아니라 지구도 남북극을 축으로 하여 제자리에서 1년에 366회전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처음 대두된 지구의 구형설(球形說)을 수용하고 주돈이의 역학과 만물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으로서의 기(機)의 작용을 설명한 장재의 논리에 자신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브라헤의 천체관에서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지구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브라헤의 주장에 반박했는데, 이 같은 종합적 판단 능력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김석문의 지전설은 세밀한 천문 관측을 통해 자연과학적 논리로써 체계화한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역학도해(易學圖解)』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성리학의 미비점을 보충하기 위한 설명으로서의 천체관이었으며, 여기에 한계점이 있다.

또, 일정한 시기를 주기로 인류 역사와 문명 그리고 자연 현상까지도 흥망성쇠를 되풀이한다는 순환론적 역사 철학을 주장하였다. 하지·동지에 적도와 황도가 23.5°의 상거각도를 이루는데 그 각도는 때때로 달라진다는 점, 고비사막처럼 옛날에 바다였던 곳이 육지가 되기도 하고 지금 해안의 어느 곳은 해저로 가라앉고 있는 점, 지구의 각 지점마다 받는 태양의 광량(光量)이 달라 한서(寒暑)·흉풍(凶豊)·정치윤리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 등을 들어 중국 중심의 세계관·역사관에서 탈피하려 하였다.

요컨대, 오늘날 중국이 문화의 원천지로서 영광된 역사를 누리는 것은 인문 생활에 알맞은 온대 지역이기 때문이지만, 어느 때에 동토(凍土)로 변해 소멸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지금은 비록 삭막한 한대 지방이지만 문화가 꽃필 수 있는 온대 지역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논리이다.

이 같은 주장은 현재 전성기에 있는 중국이 언제까지나 홀로 번영을 누릴 수 없으며, 현재의 약소국이 미래의 대국이 되지 못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의미로 파악된다.

순환론적 역사 철학을 주장하며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탈피하려는 바탕에는 지구의 구형설에 대한 확신으로 누구나 자기가 서 있는 곳이 땅의 중심이라는 것, 지구가 자전을 거듭하는 동안에 일어났다고 믿어지는 여러 가지 변화, 그리고 소옹의 순환론을 체계화한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등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석문의 지전설은 김원행(金元行)과 제자 황윤석(黃胤錫) 및 안정복(安鼎福)·이규경(李圭景) 등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다. 그리고 홍대용(洪大容)의 지전설·역사철학은 그로부터 전수받은 것이었다.

또, 박지원(朴趾源)은 중국인 왕민호(王民皡)에게 해·달·지구를 뜻하는 삼대환(三大丸)의 부공설(浮空說)로서 지전설을 소개해 절찬을 받았다. 저서로 『역학도해(易學圖解)』가 있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역학도해(易學圖解)』
『열하일기(熱河日記)』
『담헌집(湛軒集)』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조선과학사』(홍이섭, 정음사, 1946)
「17세기 이조학인의 지동설」(민영규, 『동방학지』 16, 1973)
「김석문의 지전설과 그 사상적배경」(이용범, 『진단학보』 41, 1976)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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