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명은 김우홍(金宇弘)이다.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서 재산가의 3대독자로 태어났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농업에 종사하다가 18세 무렵 이창유(李昌裕)로부터 「양주별산대놀이」의 탈 제작법과 춤을 배웠다.
1961년에 개최된 제2회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개인상을 수상했다. 이어 1962년 김성태(金星泰)를 다시 사사하여 그로부터 배운 대로 탈을 만들었고, 그 뒤 연희본을 충실히 채록하여 6·25 전쟁 이후 거의 전승이 끊겼던 「양주별산대놀이」를 원형대로 복원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1964년 12월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인 「양주별산대놀이」의 가면제작 및 탈춤교습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 뒤에도 가면제작 및 산대놀이 후원자로 활약하였다.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은 프린트본으로 만든 「양주별산대놀이가 걸어온 자취」(1968) 등 그의 유고를 모아 『양주별산대놀이』를 발간하였다. 후계자로 박교응(朴敎應), 유경성(柳敬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