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익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지평, 승지, 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양경(亮卿)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34년(인조 12)
사망 연도
1698년(숙종 24)
본관
안동(安東)
주요 관직
경상도관찰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지평, 승지, 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양경(亮卿). 김계현(金繼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낙서(金洛瑞)이고, 아버지는 성천부사 김언(金琂)이며, 어머니는 이선립(李先立)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아버지가 병자호란 때 적병과 싸우다가 순절하자 중림찰방(重林察訪)에 기용되어 관계에 나갔으나, 1681년(숙종 7) 헌납(獻納) 박태손(朴泰遜)으로부터 탐학하다는 탄핵을 받아 사판(仕版: 관리들의 명단)을 삭거당하였다.

그 뒤 다시 서용되었으며 1686년 전주판관(全州判官)으로 재임시 53세의 나이로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양사(兩司: 사헌부·사간원)에 들어갔다.

1694년 지평(持平)으로 재임시에 시관(試官)으로 영남지방을 다녀와서 백성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궁방(宮房:왕과 선왕의 집안인 '궁실'과 왕실로 부터 분가한 왕자·공주의 종가인 '궁가'의 통칭)의 침탈상을 보고하고 그 구제책을 촉구한 바 있으며, 이듬해에도 군병(軍兵)의 기강확립과 궁방의 검약한 생활 등을 건의한 바 있다.

이후 여러 차례 승지에 발탁되었으며, 1698년 경상도관찰사로 재임시 도내를 순시하던 중 청송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청선고(淸選考)』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