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군중(君重). 김현문(金炫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홍원(金弘遠)이고, 아버지는 김몽서(金夢瑞)이며, 어머니는 유성오(柳星五)의 딸이다.
1714년(숙종 40)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계에 진출하였다.
오랫동안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재직하였다. 특히, 1734년(영조 10) 헌납(獻納)으로 있으면서 대동법의 편리함을 원용하여 군포(軍布)도 베 대신 쌀로 내게 하여 백성들의 군역(軍役) 부담을 경감시키자는 새로운 군역제도의 시행방법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또한, 당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던 문과(文科) 출신자의 적체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나름대로 제시하였다. 즉, 각 관청의 문과 출신의 자리를 증설하고, 수령 임명시에 문관(文官)·음관(蔭官)·무관(武官)을 반드시 교대로 등용할 것을 청하였다.
이밖에도 민생문제·사회기강문제 등에 많은 관심을 가져 여러 차례 소를 올린 바 있다. 관직은 공조참의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