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당시 기병(起兵)하였지만 노모(老母)의 만류로 전장(戰場)에 나가지는 못하였다. 1637년(인조 19) 인조(仁祖)가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한 이후 과거 응시를 포기하고 고향에서 경학(經學)에 전념하였다. 1640년 모친상을 당했고, 3년상을 마친 후 와룡산(臥龍山) 아래 도연(陶淵)으로 이주하여 와룡초당(臥龍草堂)을 짓고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1651년(효종 2) 광릉참봉(光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이후 영해(寧海) 청기현(靑杞縣)으로 이주하였고, 1669년(현종 10) 7월 13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