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영광 출생. 정창업(丁昌業)의 문하에서 공부하다가 조선 말기 판소리의 가선(歌仙)으로 꼽히던 박기홍(朴基洪)의 문하에서 판소리를 닦았다.
1907년에 김창환협률사(金昌煥協律社)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1910년 해산된 뒤에 고향에 내려가 은거하였다. 그는 매우 뛰어난 명창이었지만, 지방에 묻혀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심청가」와「적벽가」에 매우 능하였으며, 특히 「적벽가」에서 ‘조자룡이 장판교싸움에서 신출귀몰하는 대목’을 잘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소리를 이어받은 제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