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출생. 조선 고종 말기와 민족항일기에 활약한 5명창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진양조를 처음으로 판소리에 넣었다는 김성옥(金成玉)이고, 아버지는 판소리에 삼공제비를 응용하였다는 김정근(金正根)이다.
따라서, 판소리 명문에서 태어난 셈이다. 아우 창진(昌鎭)도 명창으로, 한때 고종으로부터 참봉의 직계를 받기도 하였다. 7세 때 아버지에게서 판소리를 공부하였고, 13세 때에는 이날치(李捺致)에게 1년간 판소리를 배웠다. 그뒤 오랫동안 홀로 공부하다가 32세 때 서울에 올라와 연흥사(延興社) 창립에 공헌하였다.
1934년에는 송만갑, 이동백과 조선성악연구회를 만들어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창극공연에도 참가하였다. 「적벽가」와 「심청가」를 잘하였고다. 특히 「심청가」중에서 ‘꽃타령’과 「적벽가」 중에서 ‘삼고초려(三顧草廬)’ 대목을 잘하였다.
원래 그의 집안은 경기도 및 충청도지역에 전승되는 중고제(中古制) 소리를 이어오고 있었는데, 김창룡도 또한 자기 가문의 소리제를 그대로 이었다고 볼 수 있으나, 전승이 끊어졌고 취입한 음반만 남아 있다. 그의 소리는 오늘날 전승이 끊어진 중고제 판소리연구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현재 남아 있는 여러 음반 중에서 「적벽가」중 ‘삼고초려’, 단가 중 「장부한(丈夫恨)」, 「수궁가」에서 ‘수정궁(水晶宮) 들어가는데’, 「심청가」에서 ‘화초타령’은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