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화순군 능주에서 태어났고, 뒤에 광주 속골(지금의 효덕동)에서 살았다. 철종 때 명창으로 이름이 높던 이날치(李捺致)에게서 소리를 배웠다. 본래 목이 좋지 못하였으나 끈질긴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명창이 되었다. 1907년 창극단 협률사(協律社)에 참가하여 창극을 한 적도 있으나 판소리에 주력하였다.
소리에서는 극도로 장식적인 선율을 구사하는 정교한 기법을 썼다. 시원시원하게 청중을 휘어잡는 송만갑(宋萬甲)과는 대조적으로 쉰 목소리와 같이 컬컬하게 나오는 수리성에 양성이 낀 성음으로 극단적인 서편제(西便制)의 판소리를 개척하였으나, 47세의 나이로 죽었기 때문에 그의 소리는 일부밖에 전승되지 못하였다.
그의 장기는 「심청가」로 당대 독보였다. 특히 「심청가」의 첫머리인 ‘심봉사를 소개하는 대목’은 그의 특장으로, 박화섭(朴化燮)을 통하여 한승호(韓承鎬)에게 그 더늠이 전해지고 있다. 그의 제자로는 김정문(金正文)·한성태(韓成泰)·박종원(朴宗元)·공창식(孔昌植)·박동실(朴東實)·박화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