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무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용대 지도위원, 화북조선독립동맹 선전부 부장, 화북조선청년혁명학교 교무주임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1년
사망 연도
1943년
출생지
함경북도 온성군
정의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용대 지도위원, 화북조선독립동맹 선전부 부장, 화북조선청년혁명학교 교무주임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본명은 김준길(金俊吉). 함경북도 온성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중국으로 건너가 1934년 2월부터 낙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 1934년 7월부터 남경(南京)의 중앙대학(中央大學)에서 수학하였다.

1935년 8월 하순 정성언(鄭成彦) 등과 공산주의 비밀결사 혁명동지회(革命同志會, 10월회)를 조직, 지도하였다. 1936년 5월에는 민족혁명당에 입당하였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이후인 1937년 12월 중국 육군중앙군관학교 특별훈련반(陸軍中央軍官學校特別訓練班)에 들어가 1938년 5월 졸업하였다.

5월에 개최된 조선민족혁명당 제3차 임시전당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으나 6월 조선민족혁명당을 탈당하고, 그후 조선청년전위동맹을 조직하여 간부로 활동하였다. 1938년 10월에는 무한(武漢)에서 조선청년전위동맹원들을 이끌고 조선의용대 창설에 가담, 조선의용대 지도위원으로 추대되었다.

무한이 일본군에게 함락당하자 조선의용대 제2구대원들을 이끌고 호북성(湖北省)의 중국군 제5전구(第五戰區)에서 항일선전활동을 전개했으며, 1939년 말에는 조선의용대 부지대장에 취임하였다. 이후 의용대를 화북으로 이동시키자고 주장했으며, 1941년 여름 부대원들을 이끌고 화북에 있는 팔로군의 근거지로 이동하였다.

1941년 7월부터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정치지도원, 1942년 7월부터 화북조선독립동맹 중앙집행위원 겸 선전부 부장, 1942년 11월부터 화북조선청년혁명학교 교무주임으로 활동하였다. 1943년 팔로군 작전지구 태항산(太行山)에서 일본군과 교전중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상훈과 추모

2001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조선의용대 화북지대의 팔로군과의 연대투쟁」(염인호, 『한국독립운동사연구』10,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6)
『思想情勢視察報告集』(社會問題資料硏究會 編, 1936)
『思想情勢視察報告集(其の二)』(社會問題資料硏究會 編,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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