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림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용대 여자복무단 부대장으로 활동하며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의료인 ·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906년(고종 43)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평양
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용대 여자복무단 부대장으로 활동하며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의료인 ·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평양 출신. 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평양의 유치원 교원학교에서 수학하였다. 평양의 학생들로 조직된 역사문학연구회에서 활동하였으며, 1927년에는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성진·안주 등지에서 학생운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 상해로 망명하여 김구(金九)가 이끄는 애국단(愛國團)에 가담하여 활동하였으며, 1932년에는 중국 광주(廣州)에 있는 중산대학(中山大學) 법률학부에서 수학하였다.

1935년 늦가을 광주에 온 윤세주(尹世胄)를 만나 이듬해 1월 민족혁명당에 입당하여 당의 부녀국에서 의료보건사업의 책임을 맡았다.

중일전쟁 발발 후 중경(重慶)에서 활동하다가 1939년 3월 계림(桂林)으로 가 조선의용대 여자복무단(朝鮮義勇隊 婦女服務團)의 부대장(副隊長)으로 임명되어 활동했으며, 1941년 여름에는 화북(華北) 팔로군(八路軍) 근거지로 이동하였다.

1942년 3월경 화북조선인민간부훈련반(華北朝鮮人民幹部訓練班)에 입학하여 중국혁명사와 중국공산당사를 배웠으며, 졸업 후 화북조선혁명청년학교(華北朝鮮革命靑年學校, 교장 武亭) 후원 사업을 전개하였고, 1943년 봄부터 조선의용군 병원에서 일하였다.

1944년 4월 연안(延安)으로 들어가 화북조선독립동맹(華北朝鮮獨立同盟) 주석 김두봉(金枓奉)의 휘하에서 자료 수집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1월에는 중국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해방 후 오랫동안 중국 대련(大連)에서 살았다.

참고문헌

「진리의 향도 따라」(리화림,『중국의 광활한 대지 우에서』, 연변인민출판사, 1987)
「위십마중조양민족요단결(爲什麽中朝兩民族要團結)」(리화림, 『조선의용대통신(朝鮮義勇隊通迅)』제22기, 1939.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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