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상 나비아목에 넣기도 하나 이것은 편의상의 분류이지 계통분류학상의 분류는 아니다.
나비는 한자어로는 호접(蝴蝶)·협접(蛺蝶)·접(蝶)이라 하였고, 분접(粉蝶)·압접·달말(橽末)·서(胥)·옥요노(玉腰奴)·옥비전(玉飛錢)·풍접(風蝶)·봉자(鳳子)·봉차(鳳車)·귀차(鬼車)·촌이래(村裏來) 등이라고도 하였다.
우리말로는 1481년에 나온 『두시언해』에 ‘나비’ 또는 ‘나뵈’로 나오고, 1527년에 나온 『훈몽자회』에는 ‘나뵈’로 나오며, 숙종 때 나온 『시몽언해물명』에는 남ᄋᆡ로 나온다. 그 뒤부터는 ‘나뵈’ 또는 ‘나비’로 불리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예전에는 오늘날의 ‘나방’에 해당되는 우리말은 없었던 것 같고 이 경우에도 ‘나뷔’라고 하였다.
『물명고』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번데기로 겨울을 나고, 그 날개를 접는 것을 모두 접(蝶)이라 하였으며, 이 접을 아(蛾:나방)와 구별하였다. 『본초강목』에서는 접은 수염이 아름답고 아는 눈썹이 아름답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나비류의 곤봉 같은 더듬이를 수염으로, 나방류의 깃털 같은 더듬이를 눈썹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므로 구북구계(舊北區系)와 동양구계(東洋區系)의 나비가 함께 살고 있어서 면적에 비하여 나비의 종류가 많은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보고된 나비는 8과 248종으로 이 가운데 7종은 길을 잃었거나 우연히 생긴 것이다. 전세계에는 약 2만 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날개는 앞과 뒤 각 1쌍이 있으며, 입은 빨대 모양으로 나선상(螺旋狀)을 이룬다. 더듬이는 대부분이 곤봉 모양으로 끝이 부풀어 있다. 크기는 산제비나비와 같이 날개를 편 길이가 130㎜나 되는 대형종에서부터 쇠빛부전나비와 같이 25㎜가 되는 소형종까지 다양하나 대부분은 중형종이다. 분포는 함경북도지방에서만 살고 있는 것이 49종이고, 남쪽 해안지방과 부속도서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12종이다.
고도에 따른 수직분포를 보면, 왕붉은점모시나비는 백두산이나 함경도의 고산지대에서만 살며, 산굴뚝나비는 제주도의 정상 부근인 백록담 주변에서만 서식한다. 제비나비는 평지에 많이 살고 산제비나비는 산에 많다.
이와 같이, 나비의 종류에 따라 서식장소가 다른 것은 식초(食草)의 분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나비의 일생은 알·유충·번데기·성충의 네 단계를 지난다. 성충은 대부분 낮 동안 활동하지만 종류에 따라 다소 행동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백색과 노랑색 계통의 나비는 양지바른 풀밭에서 날고, 흑색 계통은 양지바른 곳과 숲 사이를 오가며, 흑갈색 계통은 잡목 사이에서 주로 활동한다. 나비 중에는 같은 종이라도 계절에 따라서 다른 형을 나타내는 것이 많은데, 이와 같은 현상은 유충시기의 일조시간 장단에 좌우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알은 보통 유충의 먹이가 되는 식물에 낳는다. 유충은 보통 풀잎이나 나뭇잎을 먹고 자라는데, 바둑돌부전나비 유충은 동물성인 진딧물을 먹고 산다. 담흑부전나비의 유충은 개미집에서 개미에 의하여 키워지는데, 개미는 유충의 밀샘에서 나오는 단물을 먹는다. 유충시기의 탈피는 4회 전후인데, 종령유충(終齡幼蟲) 다음의 탈피로 번데기가 된다.
번데기는 종류에 따라서 특징이 다른데, 빛깔은 보호색을 나타내는 것이 많다. 성충인 나비는 대부분 꽃에서 꿀을 빨아먹으며 살고 있으나, 오색나비나 신선나비무리와 그늘나비무리들은 나무의 수액을 빨아먹고 산다. 제비나비·산제비나비·푸른부전나비 따위는 물을 먹기도 한다.
나비는 꽃을 좋아하는 동물로서 일찍이 서화나 시가의 소재가 되었다.
『삼국유사』 선덕왕지기삼사조(善德王知幾三事條)에는 선덕여왕이 당 태종(太宗)이 보낸 모란의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그 꽃이 향기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기록이 있다.
사불산·굴불산·만불산조(四佛山·掘佛山·萬佛山條)에는 신라경덕왕이 당나라 대종(代宗)이 불교를 숭상한다는 말을 듣고 만불산을 만들어 바쳤는데, 매우 정교하게 만들었으므로 조금만 문 안으로 바람이 들어가면 벌과 나비가 훨훨 날았다는 기록이 있다.
『동국세시기』에도 오월 단오에 단오선(端午扇)을 만드는데, 기생이나 무당의 부채에는 나비·흰붕어·해오라기의 그림이 많다고 하였다. 『경도잡지 京都雜志』에도 작은 병풍에는 꽃·새·나비 등을 그린다고 하였다. 이처럼 나비는 꽃을 그리는 그림이면 으레 들어가게 마련이어서 그림의 소재로 빈번히 등장되었다.
또, 꽃을 여자에 비유하고 나비는 남자에 비유하여, 그리운 여인을 본 남자가 그대로 지나쳐 버릴 수 없다는 의미로 ‘꽃 본 나비 담 넘어가랴.’라는 속담을 쓰고, 남녀의 정이 깊어 비록 죽을 위험이 뒤따르더라도 찾아가 즐김을 이르는 말로 ‘꽃 본 나비 불을 헤아리랴.’라고 한다. 이처럼 꽃과 나비는 물과 기러기, 여자와 남자의 관계로 인식되었다.
흔히 불리는 민요 중에 “나비야 청산을 가자/호랑나비야 너도 가자/가다가 길 저물거든 꽃잎 속에서 자고 가자/꽃잎이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라도 자고 가자.”라는 노래가 있는데, 여기서도 꽃과 나비는 남녀관계로 비유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나비에 관한 속신(俗信)은 나비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른 봄에 흰나비가 집안으로 들어오면 그 집에 초상이 난다고 하고, 제일 먼저 흰나비부터 보면 소복을 입게 된다고도 한다.
민요가사 중에 “백설 같은 흰나비는 부모님 거상을 입었는 듯/장다리 밭으로 날아든다.”는 구절은 이 같은 흰나비에 대한 관념을 표현한 것이다. 반면에 호랑나비는 좋은 조짐으로 인식되었다.
아침에 호랑나비를 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고, 이른봄에 호랑나비를 보면 신수가 좋다는 말이 있다. 그 밖에 나비가 불에 뛰어드는 것을 보면 패한다고 하며, 나비를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비면 눈이 먼다는 금기도 있다.
나비에 관련된 설화로는 「황나비무덤전설」과 「나비의 유래」 등이 있다. 황해도 신천군 만궁리 뒷산에는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이끌고 청군과 용감히 싸우다 전사한 황장군의 무덤이 있는데, 황장군이 죽었을 때 한 마리의 노랑나비가 날아와 조의를 표하므로 이 나비도 황장군과 함께 묻었다고 한다. 그 뒤로 이 무덤을 「황나비무덤」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나비의 유래」는 중국의 「축영대설화 祝英臺說話」와 같은 내용인데 「문도령설화」라고도 한다. 남장한 처녀가 동문수학하면서 앞날을 약속한 문도령을 못잊어 문도령이 죽은 무덤에 뛰어들어 함께 죽었는데, 이 때 여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자 옷자락이 뜯어지면서 나비가 되어 날아갔다는 이야기이다. 이 설화는 함경도 무가 「문굿」으로도 전승된다.
그 밖에도 나비는 시나 소설의 소재로 많이 등장되었으며, 노리개와 같은 공예품으로도 많이 제작되었다. 요즈음은 나비의 날개를 떼어내어 비닐 사이에 넣고 눌러 만든 테이블보, 물감 대신에 날개의 색채와 무늬를 이용하여 그린 나비 그림, 나비 표본을 액자에 넣어 만든 벽걸이 등의 장식품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