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시운 ()

근대사
인물
개항기 때, 안승우 의진에서 도령장으로 활동한 의병.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896년(고종 33)
본관
안정(安定)
출생지
강원도 평창
정의
개항기 때, 안승우 의진에서 도령장으로 활동한 의병.
개설

본관은 안정(安定). 강원도 평창 출신. 임진왜란 때 의병 나수천(羅壽天)의 후손이다. 총을 잘 쏘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시운에게서 총 쏘는 방법을 배웠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95년 을미의병(乙未義兵)이 일어나 안승우(安承禹) 의진(義陣)이 평창으로 오자 그 휘하에 들어가 도령장(都領將)이 되었다.

항상 바른말을 잘하여 신임을 받았으며 충주(忠州)에 주둔하였을 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다가 과로로 병이 들자 안승우가 귀향하라는 특명을 내렸으나 잠시 귀향하였다가 곧 의진으로 돌아왔다.

가흥(佳興)전투에서 적의 소굴로 깊이 들어가 많은 적을 사살하여 커다란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매복하여 있던 적의 기습을 받아 사로잡혀 순국하였다. 일본군은 다른 의병의 시신은 모두 매장하였는데 나시운만은 불태워 죽였다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기려수필(騎驢隨筆)』(송상도)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국가보훈처, 1972)
「하사안공을미창의사실(下沙安公乙未倡義事實)」(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 국가보훈처)
집필자
정진각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