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남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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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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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지방행정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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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발해의 지방행정기구.
내용

발해의 5경 가운데 하나인 남경과 15부 가운데 하나인 남해부를 가리킨다. 남경과 남해부의 치소는 동일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관청이 하나였는지 분리되어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신당서(新唐書)』에는 남경남해부를 옥저의 옛 땅이자 발해에서 신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라고 하였고, 옥주(沃州)‧정주(睛州)‧초주(椒州) 3주를 거느린 것으로 나온다. 특산품으로는 남해부의 곤포(昆布: 다시마)와 시(豉: 메주), 옥주의 면(緜) 등이 있다.

남경남해부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동안 제기되었던 대표적인 위치 비정설로는 함경남도 함흥설(咸興說)과 함경남도 북청설(北靑說), 함경북도 종성설(鐘城說)‧경성설(鏡城說) 등이 있다.

『속일본기(續日本紀)』에는 776년 남해부 ‘토호포(吐號浦)’에서 발해 사신단이 일본으로 출발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므로 남해부의 위치 비정에는 특산품인 양질의 다시마가 생산되면서, 사신단이 이용할 만큼 항구가 발달한 지역이 있는 곳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정약용은 곤포의 주요 산지인 함흥을 남해부로 보았고, 많은 지지를 받았다. 함흥을 남해부로 보는 견해 가운데에는 ‘토호포’를 함흥 서남쪽 약 15㎞ 떨어진 ‘연포(連浦: 고려‧조선시대 都連浦)’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북한에서 발굴 성과를 토대로 북청군의 청해토성(북청토성)을 남해부로 비정한 이후 북청설이 통설화되어 있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속일본기(續日本紀)』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丁若鏞, 1811)
「발해 남경남해부의 위치 추정에 대한 고찰」(조병순, 『서지학보』 28, 2004)
「발해남경남해부의 위치에 대하여」(채태형, 『력사과학』, 1991)
「청해토성 및 그 주변의 발해유적」(김종혁, 『조선고고연구』 1990-4, 1990)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洋學報』 36·4, 1954)
「渤海國の疆域」(松井等,『滿洲歷史地理』,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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