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7년(선조 1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항(李恒)과 김천일(金千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사우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85년(숙종 11)에 ‘남고(南皐)’라고 사액되어 서원으로 승격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가 유림에 의하여 제단을 마련하고 향사를 계속하여왔다.
그 뒤 1899년에 강수재(講修齋)를 중건하였으며, 1927년 서원을 복원하는 동시에 김점(金坫) · 김복억(金福億) · 김승적(金承績)을 추가 배향하고, 1974년에 다시 소산복(蘇山福)을 추가 배향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묘우(廟宇), 내신문(內神門), 4칸의 강수재, 외신문(外神門) 등이 있다. 묘우의 중앙에는 이항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오른쪽에는 김천일 · 김복억 · 소산복, 왼쪽에는 김점 · 김승적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수재는 강당으로서 중앙에는 마루가 있고 좌우에는 협실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되는 곳이다.
이 서원은 1984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해마다 2월 중정(中丁 : 두번째 丁日)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며, 유물로는 『공자통기속록(孔子通紀續錄)』 등 70여권의 문헌이 있다. 재산으로는 대지 880평 및 전답 6,500여 평, 임야 7,500여 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