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형 ()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예조정랑, 춘추관기주관, 전적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대래(大來)
무척와(無慽窩)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94년(숙종 20)
사망 연도
1760년(영조 36)
본관
만경(萬頃)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전적(典籍)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정랑, 춘추관기주관, 전적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대래(大來). 호는 무척와(無慽窩). 아버지는 노언상(盧彦相), 어머니는 풍천임씨(豊川任氏) 임강(任矼)의 딸이다. 이재(李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25년(영조 1)에 32세로 전강(殿講)에 급제하여 이듬 해 가주서(假注書)가 되었다가 부사정(副司正)에 승진되었으나 그만두고 예학에 전념하였다. 이후에도 오수찰방(獒樹察訪)·예조정랑 겸 춘추관기주관(禮曹正郞兼春秋館記注官) 등의 벼슬을 지냈으나 바로 사직하고 학문에 힘썼다.

41세 때에는 전적(典籍)으로 승진되어 입시하여 일곱 가지 주요한 일을 개진하기도 하였는데 학교를 일으킬 것, 인륜(人倫)을 밝힐 것, 효제(孝悌)를 습속화 할 것 등이 주 내용이었으며, 학문의 경향은 철저하게 예학 일변도였으니 그의 문집에 나오는 잡저(雜著)나 논(論)도 예를 실행하는 한 방법으로 다루어졌는데 비교적 논리가 정연하고 생각이 참신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당시 피폐되어 가는 예에 대한 비판이나 거기에 제시된 방법들은 퍽 유의되어야 할 부분이다. 저서로는 『무척와집(無慽窩集)』이 있다

참고문헌

『국조방목(國朝榜目)』
『무척와집(無慽窩集)』
『영조실록(英祖實錄)』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