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육은 605년(진평왕 27)에 신라에서 사신으로 온 혜문(惠文)을 따라 귀국하였다. 신라에 돌아온 뒤 그의 교화 활동은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담육은 진평왕의 지극한 환대를 받았던 지명(智明)과 함께 당대의 고승으로 추앙받았다고 전한다.
고려 중기에 영통사의 승려 각훈(覺訓)이 지은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는 담육과 지명 두 승려의 재능과 덕행이 서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는 점이 기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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