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비는 1651년(효종 2)에 김육(金堉)이 영의정으로 있을 때 충청도에 대동법을 시행토록 상소하여 왕의 허락을 얻어 실시하였고, 왕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우도록 하였다.
원래 대동법은 1608년 경기에서 처음 실시되었다. 이전에 각 지방의 특산물로 내던 공물(貢物)은 국가에서의 소요 시기와 백성의 납부 시기가 맞지 않는 등 폐단이 많았다. 이에 각 지방의 대소에 구분 없이 토지의 결수(結數)에 기준으로 쌀로 환산해서 납부하고 산간 · 해안지역에서는 무명으로 납부하게 한 조세제도이다.
1651년 영의정 김육이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충청도에도 대동법을 시행토록 상소하여 효종의 윤허를 얻어 실시함으로써 국가 재정을 정비하고 민폐를 덜게 하였다. 비의 원이름은 ‘金堉大同均役萬世不忘碑(김육대동균역만세불망비)’ 또는 ‘湖西宣惠碑(호서선혜비)’라고도 한다.
비문은 홍문관부제학 이민구(李敏求)가 짓고 의정부우참찬 오준(吳竣)이 썼다. 귀부(龜趺) · 비신(碑身) · 이수(螭獸)를 갖춘 비로 1970년에 원래의 위치에서 북서쪽으로 200여m 지점인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대동법을 설정하여 국민간의 상거래를 보다 원활히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였다.
비는 귀부, 비신, 이수로 구분되어 있으며 귀부는 짧은 목에 과장된 눈 · 코 · 입을 형상화해서 매우 친근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수는 다른 비와 마찬가지로 쌍룡이 얽혀 옥을 다투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높이는 300㎝, 너비 85㎝, 두께 24㎝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