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독교교육협회는 한국 기독교 교육의 진흥을 위해 국내 주요 교단과 기관이 연합하여 설립한 기독교 교육 협의체이자 전문 기관이다. 대한기독교교육협회의 설립은 국내 주일학교 운동의 발전과 연속선상에 있다. 대한기독교교육협회의 역사는 주일학교위원회 시기, 조선주일학교연합회 시기, 대한기독교교육협회 시기(1947~2000, 2000~2010, 2010~현재)로 구분할 수 있다. 2022년 대한기독교교육협회는 창립 100주년을 맞아 한국기독교교육 연합기관으로 다시 태어나 한국 기독교 교육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사역을 다시 시작하였다.
대한기독교교육협회의 설립은 국내 주일학교 운동의 발전과 연속선상에 있다. 대한기독교교육협회는 1922년 설립된 ‘조선주일학교협회’를 모체로 하고 있으며, 2022년에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대한기독교교육협회의 역사는 몇 개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905년에 선교연합공의회 안에 주일학교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처음에는 선교사들로만 위원이 구성되어 있었으나, 1911년에 한국인이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인 위원으로는 현순(玄楯) · 윤치호(尹致昊) · 한석원(韓錫源) · 남궁혁(南宮爀) · 홍병선(洪秉璇) 등이 참여하였다.
세계주일학교협의회의 위원장인 하인즈(Heinz)가 공식적으로 방문한 1913년에는 서울의 주1에서 14,000여 명의 주일학교 교사와 학생이 모인 가운데 대회가 열렸는데, 이것이 연합 운동의 성격을 띤 국내 최초의 주일학교 대회였다. 한국인이 국제 주일학교 대회에 참석한 것은 1907년 윤치호가 로마에서 열린 제5차 세계 주일학교 대회에 참석하면서부터이다. 그 뒤 이승만(李承晩) · 신흥우(申興雨) 등이 참석하였으나, 1920년 이후로는 일제의 제지로 참석하지 못하였다.
다음 시기는 대한기독교교육협회의 주2이라 할 수 있는 조선주일학교연합회 시기이다. 조선주일학교연합회를 대한기독교교육협회의 전신으로 보는 이유는 1948년 대한기독교교육협회가 문교부에 주3로 등록하였을 때, 단체 창립일을 조선주일학교연합회의 창립일로 삼았기 때문이다.
조선주일학교연합회는 국내 최초로 1921년에 전국주일학교대회가 열린 다음 해인 1922년 11월 1일 성서공회 회의실에서 장로교 · 감리교에서 각 8명, 북장로교 · 북감리교 · 남감리교 선교부에서 각 2명씩, 남장로교 · 캐나다장로교 · 호주장로교 선교부에서 각 1명씩, 그리고 주일학교 대표 · 조선야소교서회에서 각 1명씩, 총 10개 단체에서 주4 27명으로 총회를 구성하고, 실행부 · 교육부 · 편집부 · 재정부 · 검열부 · 통계부 등 6개의 분과 위원회를 편성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조선주일학교연합회는 설립 목적을 ‘협력(cooperation)에 의해서 선교 구역과 각 지방 지역 주일학교연합회들을 자문하고 협력하며 여러 교회에 그러한 모든 일에 대한 보고서를 제공하기 위해서 가능한 최상의 주일학교 주5와 주일학교 관련 자료집들을 준비’하는 데 두었다.
초기 3대까지 선교사가 총무직을 맡았으나, 1925년 정인과 · 한석원 목사가 협동 총무로 선출되면서 한국 교계 지도자들이 실무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들은 1925·1929·1933년에 전국주일학교대회를 개최하였고, 만국통일주일공과 · 부별계단공과 등의 주일학교 교재와 어린이를 위한 월간 잡지 『아희생활』을 발간하는 등 많은 일을 하여 주일학교 운동의 황금기를 맞았다. 그러나 1938년 일제의 탄압으로 강제 해산되었다.
대학기독교교육협회가 공식적으로 만들어진 이후 대한기독교교육협회의 활동은는 크게 3차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 1차 시기(1947~2000)
1945년 광복과 함께 기독교 주6 운동의 재건은 한국 교회의 시급한 과제였다. 1947년 1월 4일 재건총회를 열고, 한경직 목사를 회장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된 조선주일학교연합회를 다시 세웠다. 그리고 세계주일학교연합회가 단체의 명칭을 세계기독교교육협회로 변경하자 1948년 11월 조선주일학교연합회는 단체명을 대한기독교교육협회로 변경하였다. 명칭을 바꾼 대한기독교교육협회는 활동의 범위를 다음과 같이 넓혀 가기 시작했다.
(1) 한국교회협의회(KNCC)에 가입하여 상호 긴밀한 유대관계를 지속하였다.
(2) 주일학교에 집중했던 기독교 교육을 기독교학교(중고등학교 및 대학교)로 확장시켰다.
(3) 발전된 형태의 계단공과(유치부 12권, 유년부 13권, 초등부 13권, 중등부 13권 등 총 11권)를 편찬했다.
(4) 다양한 기독교 관련 전문도서를 출판했다.
(5) 세계기독교교육협회에 가입하고 국제기구와의 교류를 발전시켰다.
(6) 전국 학생들의 종교인구 실태조시를 실시했다.
(7) 기독교 교육의 저변확대를 위해 기독교 교육관련 방송을 시도했다.
이러한 발전 속에서 대한기독교교육협회는 구세군대한본영 · 기독교대한감리회 · 기독교대한복음교회 · 기독교대한성결교회 · 기독교한국루터회 ·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교회 · 대한성공회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 한국기독교장로회 등 국내 주요 11개 교단이 참여하는 연합 기관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1961년 대한기독교교육협회는 교육 전문지인 『기독교 교육』을 창간하였다. 처음에 주7로 발행되던 『기독교 교육』은 1965년에는 격월지로 발행되었고, 1969년에는 월간지로 발행되었다. 『기독교 교육』은 최근까지 꾸준한 발행을 이어 오며 국내 기독교 교육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2) 2차 시기(2000~2010)
해방 이후 대한기독교교육협회는 거의 50년 동안 한국 기독교 교육의 연합체로서 건실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2002년 창립 80주년을 맞은 대한기독교교육협회는 주선애 장신대학교 명예 교수와 김재두 목사, 김옥규 장로 등 각 교단별 기독교 교육 유공자를 선발 · 시상하였다. 그리고 11개 가맹 교단이 연합하여 인권을 존중하고, 평화로운 세상 만들기를 위한 ‘평화 교육 프로젝트’를 실시하였고 한일기독교교육협의회 · 한미기독교교육협의회를 개최하여 기독교 교육 국제 교류의 폭을 넓혔다. 같은 해 9월에는 월간 『기독교 교육』 400호 기념호를 발간하였다.
2000년으로 접어들면서 대한기독교교육협회는 다양한 기독교 교육적 과제를 책임져야 했다. 월간 『기독교 교육』의 내용을 미루어 보면, 2005년까지 기독교 교육과 신학의 연관성에 관한 많은 연구를 했다. 또한 성서 해석과 해석 방법론, 생태, 평화, 공동체를 주제로 하는 기독교 교육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또 간세대(間世代)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10년까지 월간 『기독교 교육』은 연구 핵심 주제를 영성-심리-선교로 변경하였다. ‘렉시오 디비나’와 애니어그램 등에 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3) 3차 시기(2010~현재)
2010년 이후 대한기독교교육협회는 큰 재정난을 겪었다.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대한기독교교육협회는 결국 2015년에 해산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2022년 대한기독교교육협회는 창립 100주년을 맞아 한국 기독교 교육 연합 기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6월 22일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4교단과 대한기독교서회 기관이 참여하여 재건 총회를 개최하고 한국 기독교 교육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주8을 다시 시작하였다.
대한기독교교육협회의 주9에는 다음과 같은 사업을 목적으로 두고 있다.
(1) 기독교 교육에 대해 연구하고 발표하여 공론화 하는 일
(2) 한국 교회의 기독교 교육에 관해 회원 교단의 협력과 일치를 모색하는 일
(3) 각종 한국 기독교의 교육 기관과 교육 사업의 협력을 도모하는 일
(4) 각종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기독교 교육적 입장 확립과 참여를 모색하는 일
(5) 기타 이 회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일
대한기독교교육협회는 국내 주요 교단들의 협력을 통해 구성된 협력체로서, 교단 간의 경쟁과 분열을 지양하고 주10 협력을 통해 한국 기독교 교육 및 교회 학교의 발전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