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6년(선조 39)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몽주(鄭夢周)·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1616년(광해군 8) 노수신(盧守愼)·유성룡(柳成龍), 1635년(인조 13) 정경세(鄭經世)를 추가배향하였다. 1677년(숙종 3) ‘도남(道南)’이라고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하였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경내의 건물로는 묘우인 도정사(道正祠), 동재인 손학재(遜學齋), 서재인 민구재(敏求齋), 신문(神門)인 입덕문(入德門), 강당인 일관당(一貫堂), 누각인 정허헌(靜虛軒)과 풍우단(風雩壇)·영귀문(詠歸門) 등이 있었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다. 현재는 강당인 일관당만 남아 있으며, 묘우와 강당자리에는 초석(礎石)이 원형대로 남아 있다.
서원 경내에 단소를 모아, 도내의 유림이 매년 3월 회일(晦日 : 그믐날)에 단장(壇長, 1인)과 유사(有司, 2인)를 선출하여 향사를 치르고 있다. 재산으로는 전답 3,500평, 임야 2정보 반, 대지 1,000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