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는 우왕 때 육도도순찰사(六道都巡察使)라는 것이 있어 왜구의 창궐에 대비하기 위하여 각 도에 1인씩 재상을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는 도체찰사(都體察使)·도순찰사의 구분이 있어 정1품 재상은 도체찰사, 종1품 재상은 체찰사, 정2품 재상은 도순찰사, 종2품 재상은 순찰사로 구분하기도 하였으나, 세조 때 이 구분을 없애어 도순찰사·순찰사로 일원화하였다.
그러나 1488년(성종 19) 9월 명호에 등차가 없어 불편하다고 하여 다시 구제로 환원하였다. 『속대전』에 의하면, 재상으로서 군무(軍務)를 받으러 사신으로 나간 자가 의정이면 도체찰사, 종1품 이하면 도순찰사, 종2품이면 순찰사, 종3품이면 찰리사(察理使)라 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