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5경 중의 하나이다. 제3대 문왕 대흠무(大欽茂)가 785년 무렵 이곳으로 천도한 이후 제5대 성왕 대화여(大華璵)가 다시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로 천도하는 794년까지 약 10년간 발해의 수도였다. 일명 ‘책성부(柵城府)’라고도 하며, 속주(屬州)로는 경(慶)·염(塩)·목(穆)·하(賀)의 4주가 있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신당서≫에는 발해에서 일본으로 가는 기점으로 되어 있고, 또 상경용천부에서 동남쪽의 바다에 가까운 것으로 그 방향을 밝히고 있어, 지금의 간도 혼춘(琿春)설, 간도의 국자가(局子街)설, 함경북도온성(穩城)·종성(鍾城)설,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설, 니콜리스크(Nikolisk)설 등이 있다.
이처럼 혼란을 보였던 동경용원부의 정확한 위치는 1942년에 이르러 혼춘현의 반라성(半拉城) 발굴 결과 그 유지의 규모가 상경용천부나 중경현덕부와 겨룰만하다는 것이 밝혀져 동경용원부를 혼춘에 비정하는 데 대하여는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반라성의 출토품에서 중요한 것은 이불병좌상(二佛幷座像)으로 알려진 유물이 고구려계통의 영향을 가장 뚜렷이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