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1책. 국문 필사본. 정확한 필사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동국사기」와 함께 합철된 「동국보감(東國寶鑑)」이라는 표제의 국문본 종엽(終葉)에 ‘운계’라는 사람이 “셰지 신사 팔월 이십ᄉᆞ일 필서”라고 한 것으로 볼 때, 신사년(辛巳年)인 1881년(고종 18) 전후에 필사된 듯하다.
조선의 역대 임금을 재위 순서대로 서술하였으며,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전개하면서도 각종 역사 지식과 흥미있는 이야기들을 함께 나열하고 있는 점으로 볼 때 국문 향유층에 의해 필사된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은 영동 지방의 규방 문갑에서 나왔다. 『여사서(女四書)』 등과 함께 자녀 교육서로 번역되고 필사되어 규방에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일면 역사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미하여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소설로 분류할 수 있다.
대표적인 이야기로는 이성계(李成桂)의 조선 건국에 관한 내용을 담은 「이조건국설화(李朝建國說話)」, 억울한 단종의 원혼을 위로해 준 영월 신관 박영기의 「단종의 원혼설화」, 영웅으로 태어났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남이 장군 설화(南怡將軍說話)」, 장희빈을 몰아내어 숙종을 구하고 민 중전을 회궁시켰다는 「신여철장군공훈설화(申汝哲將軍功勳說話)」, 숙종과 후비 이씨와의 인연을 이야기해 주는 「숙종과 이씨비인연설화(李氏妣因緣說話)」 등이 있다.
작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건은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의 진행 과정을 순차적으로 전개하면서도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독자의 흥미를 유도하고 있다. 그런데 임진왜란의 명장인 이순신에 대한 기술이 소략하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전란이 시작되자 이순신은 수군 대장이 되어 바다로 침입한 왜적들을 무찌르는데, 왜적의 주검이 바다에 가득하였다고만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순신은 왜적의 총에 맞아 죽는다. 반면 명에 구원군을 요청하는 과정이나 이여송과 선조의 갈등은 비중 있게 서술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선조는 판단력도 부족하고 희화화되어 있으며 임금답지 못한 면모를 보인다. 선조의 이러한 면모는 「임진록」에도 보이지만, 서술 비중으로 보아 선조에게 전란의 책임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