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 ()

고전산문
작품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이칭
이칭
흑룡록(黑龍錄), 흑룡일기(黑龍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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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임진록」은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이 작품은 16세기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전·후의 조선의 정치 상황과 왜적의 실상 및 당시 전쟁의 경과를 보여 주는 역사소설이다. 「임진록」 서두에는 선조 때의 붕당 정치로 인한 어지러운 정치상과 왜국 풍신수길이 조선을 정벌하려는 내용이 나타난다. 이후 왜군이 조선을 정벌하는 과정과, 이순신이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는 내용,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나라 구원병 이야기, 그리고 사명당 등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실상과 항쟁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정의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이본사항

한글본으로는 경판본(京板本) · 완판본(完板本)이 있다. 필사본(筆寫本)으로는 국립중앙도서관본, 이명선본(李明善本) 흑룡록(黑龍錄), 백순재본(白淳在本) 흑룡일기(黑龍日記), 한남대학교 도서관본(3책)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세창서관(世昌書館)의 구활자본(舊活字本) 「임진록」도 전하고 있다.

한문본으로는 국립중앙도서관본이 역사적 사실과 매우 가까운 것으로, 장서각본 「임진록」과 같은 계통이다. 이명선본은 고려대학교 도서관본 · 경북대학교 도서관본(번역)과 계맥을 같이하고 있다.

「임진록」은 60여 종의 이본(異本)을 가지고 있으며 이본군(異本群)만 6가지로 분류된다. 그중 핵심 계열인 ‘역사 계열’ · ‘최일영 계열’ · ‘관운장 계열’은 임진왜란이라는 공통적 화소(話素)를 가지고 있으나 그 차이가 크다.

‘역사 계열’ 한문본은 가장 이른 시기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실제 역사와 비교하기 쉽고 일관된 논리를 지니고 있다. ‘최일영 계열’은 실존 인물의 행적이나 관련 설화(說話)의 주역을 최일영으로 대체했다는 특징이 있으며, 대다수 이본에는 이순신(李舜臣)이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최일영의 영웅적 일대기를 바탕으로 임진왜란의 역사를 재구성했으며 허구성이 강하다. ‘관운장 계열’은 ‘역사 계열’과의 친연성(親緣性)이 크며 이여송(李如松)과 명나라 군대 · 관우(關羽)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한문본인 역사 계열에서는 조정의 무능한 실상을 드러내는 한편, 이순신의 전승담 및 의병(義兵)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한글본 계열은 허구성이 더 많이 개입되어 있으며 가공의 인물을 설정해서 임란 중 승리자로 설정해 놓았다. 그리고 풍신수길(豐臣秀吉)의 출생담, 일본 장수에 관한 서술도 긍정적인 편이며 그들의 능력과 일본의 전력을 높이 평가해 놓았다. 이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완화하는 동시에 풍신수길과 그의 장수들의 전력을 높이 평가함으로써, 임진왜란이 조선이 감당하기 어려운 전쟁이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 준다. 이로써 조선의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깔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임진록」은 임진왜란의 경과에 따라 해당 인물의 활약상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근대 초기에는 「임진록」의 개별 화소의 등장인물을 분리하여 해당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임진왜란의 경과를 전기(傳記)의 형식으로 서술하여 작품을 구성하였다.

내용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임진록」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최위공의 부인이 남방으로 큰 별이 떨어져 광채를 발하는 태몽을 꾼 후 관운장(關雲長)의 꿈으로 일경(日景)을 낳는 데서 비롯되어, 나중에 선조의 꿈을 최일경이 해몽하다가 동래로 귀양 가면서 임진왜란이 발발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그 뒤 이순신이 왜장 마홍에게 죽고, 마홍이 강홍립(姜弘立)에게 죽고, 천동이 정충남(鄭忠男)에게 죽고, 충남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에게 죽고, 가토는 이여송에게 죽는 짜임새 있는 전쟁사가 눈길을 끈다.

특히, 유성룡(柳成龍)이 이여송의 군대에 지원을 청할 때 압록강에서 벌인 재주 겨룸이라든가, 이여송이 조선 산천의 지맥(地脈)을 끊으려다 태백 산신의 질책을 받고 본국으로 도주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이는 「징비록(懲毖錄)」에 나오는 ‘명나라 군사[明軍]가 토해낸 음식을 조선군이 거두어 먹는다.’라는 기록처럼, 당시 지원군의 횡포에 대한 조선인의 의식과, 배일사상(排日思想) 및 배명사상(排明思想)까지 함께 보여주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이여송이 조선 산천의 맥을 끊으려다 노인의 인도로 태백산에 들어가 청의동자(靑衣童子)를 만나고 크게 질책당하는 구성은, 한문본 계통의 작품에 더 강화되어 있어 민중 속에 배명 의식의 뿌리가 깊음을 말해 준다.

또한,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제자 사명당(四溟堂)이 왕명으로 왜국에 들어가 신이한 신통력으로 항복을 받아 내고 이후 왜인들이 조선에 사죄하고 공물을 바치는 부용국(附庸國)이 됨으로써 세상이 태평해진다.

이본들 가운데 나타난 「임진록」 속의 가장 대표적 설화는 다음과 같다.

① 사명당이 일본국에 항복 받는 설화, ② 김응서(金應瑞) · 강홍립이 일본 정벌에 나서는 설화, ③ 이여송 군대의 원병(援兵)과 관련한 설화, ④ 관운장이 조선군을 뒤에서 도와준다는 설화, ⑤ 최일경의 꿈풀이에 관한 충고 설화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민족적 분노와 반성의 역사적 의식을 표출해 내고 있다.

의의 및 평가

「임진록」은 밖으로는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국가의 영토와 민족을 수호하려는 분노를 고취시키면서, 안으로는 당쟁(黨爭)으로 인한 허점을 드러내 외적의 침략을 자초한 뼈아픈 참회의 뉘우침이 담겨 있다. 말하자면 전란(戰亂)을 계기로 되돌아본 분노와 반성의 민중사(民衆史)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소설인 만큼 거의 모든 이본이 역사적 사실을 의도에 따라 크게 허구화하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현실적으로 패배한 패전의 역사를 허구적 승전사로 꾸며 놓음으로써 쓰라린 패배에 대한 정신적 보상을 얻으려는 것이 그 예이다.

한편 경판본 · 한남대본 등을 중심으로 한 「임진록」에는 이순신의 활약상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의식은 임진왜란의 뒤를 잇는 병자호란(丙子胡亂)의 의식과도 이어지며, 군담소설(軍談小說)이 잇따라 창작되는 원인이 되었다.

「임진록」에는 국조신화(國祖神話)의 동굴 모티프가 수용되어 있다. 국조신화는 나라가 위태로울 때 거론됐다. 「임진록」은 국가의 위기 · 극복 · 승리로 구성되어 있다. 전쟁 당시 무기도 없이 왜군과 맞서 싸운 관군(官軍)들과 의병들은 왜군이 물러나도록 만들었으며, 이러한 저력은 국조신화의 동굴 모티프가 집단적 무의식에 수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순신 · 곽재우(郭再祐) · 김덕령(金德齡) · 정문부(鄭文孚) · 조헌(趙憲) · 영규(靈圭) · 김응서 · 논개(論介) · 계월향(桂月香) 등을 부각시켜 그들을 높이고 우러르는 모습에서 민족적 영웅을 갈망하는 사상이 싹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임진록」은 과거를 반성하고 삶에 대한 새로운 의지를 북돋게 하는 민중 의식이 반영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壬辰錄』(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임진록』(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金光淳 編著, 『韓國古小說全集 권78』(博而精, 2007)

단행본

조동일, 「임진록에 나타난 김덕령」(『상산이재수박사환력기념논문집』, 형설출판사,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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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영, 『임병양란과 문학의식』(한국연구원, 1980)
김기동, 『한국고전소설연구』(교학사, 1981)
임철호, 『壬辰錄 硏究』(정음사, 1986)
임철호, 『임진록 이본연구』Ⅰ∼Ⅳ(전주대학교출판부, 1996)
최문정, 『임진록 이본연구』(박이정, 2001)

논문

김순휴, 「임진록고」(『동악어문학』 4, 동악어문학회, 1966)
소재영, 「임진록연구」(『숭전어문학』 1, 숭전어문학회, 1972)
소재영, 「임진록한문본논고」(『국문학논집』 5·6, 단국대국어국문학과, 1972)
蘇在英, 「壬辰錄說話の一硏究」(『朝鮮學報』 89, 朝鮮學會, 1978)
신태수, 「임진록에 나타난 허구적 인물의 성격과 기능」(『韓民族語文學』 14, 한민족어문학회, 1987)
윤경수, 「『임진록』의 작가의식과 민족의식 고찰 ―민족의식의 자각을 중심으로―」(『한국사상과 문화』 63, 韓國思想과 文化, 2012)
임철호, 「壬辰錄 硏究」(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5)
장경남, 「근대 초기 <임진록>의 전변 양상」(『고소설연구』 36, 한국고소설학회, 2013)
정길수, 「전쟁의 기억과 <임진록> -<임진록> "역사 계열" 한문본을 중심으로-」(『국문학연구』 29, 국문학회, 2014)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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