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복 ()

선사문화
물품
유라시아 초원 지대에 분포하는 유목민족의 휴대용 취사도구.
이칭
이칭
북방식동복, 오르도스식동복
물품
재질
청동
용도
취사
제작 시기
서기전 9세기~서기 6세기
내용 요약

동복(銅鍑)은 유라시아 초원 지대에 분포하는 유목민족의 휴대용 취사도구이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분묘에서 출토되는 동복의 형태는 몸통은 깊은 바리 혹은 어깨가 강조된 주판알 모양이며, 아가리에 손잡이 또는 걸개로 보이는 반환형 고리가 달린 청동 용기이다.

정의
유라시아 초원 지대에 분포하는 유목민족의 휴대용 취사도구.
연원

동복은 유라시아 초원 지대를 중심으로 널리 분포하는 유목민족의 휴대용 취사도구로, 북방식동복 혹은 오르도스식동복이라 불린다. 분포는 서로는 헝가리까지, 동으로는 우리나라까지 분포하고 있다. 헝가리까지의 분포는 주1의 서쪽 이동과 함께 서방에 전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동복은 중국 베이징〔北京〕 옌칭현〔延慶縣〕의 시보쯔촌〔西撥子村〕 출토품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연대는 서기전 9세기로 보고 있다. 중국에서는 서기전 9세기에 등장하여 서기 6세기까지 계속하여 존재하였다.

형태 및 변천

동복은 기능적인 면에서 볼 때 넓은 의미에서는 솥에 속하는 것이지만, 형태적으로는 솥과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동복의 모양은 몸통은 깊은 바리 혹은 둥근형이며, 아가리에는 대칭으로 손잡이가 붙어 있다. 손잡이의 형태는 둥근형, 네모형, 산자 모양, 반환형(半圜形) 등이 있다. 몸통에 굽다리가 붙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이른 시기에는 청동으로 제작되어 동복으로 불리는데, 한대(漢代)가 되면 철제도 나타나 혼용되었다. 또 이 시기에는 굽다리가 없는 것도 등장하며, 산자 모양, 반환형 손잡이도 등장한다. 이러한 것을 흉노복 또는 흉노식동복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동복은 주변 지역으로 확산하였는데, 서쪽으로는 헝가리까지, 동쪽으로는 주2의 영역에도 영향을 주었다. 흉노동복은 대체로 산자 모양의 손잡이와 몸통에 둥근 장식이 있고, 선비동복은 반환형 손잡이와 몸통에는 장식이 없다.

현황

고구려유적에서는 길림성 집안현 태왕향묘(吉林省 集安縣 太王鄕墓) 출토품과 길림성 동전자(吉林省 東甸子) 징집품(徵集品), 주3 출토 철제복이 있다. 가야유적에서는 김해 대성동 29호, 47호, 양동리 235호분의 출토품이 있으며, 신라유적에서는 숭실대학교박물관 소장품인 입실리 출토품으로 전하는 1점이 있다.

백제 지역은 청주 신봉동 유적 출토 철제복이 있다. 그리고 평양 정오동 1호묘 출토품과 평양 부근에서 채집한 평양박물관 소장품 1점이 있다. 동복은 소형인 평양 정오동 1호묘 출토품을 제외하면, 대략 높이 13.0~18.9㎝, 입지름 10.0~19.3㎝, 바닥지름 7.0~11.1㎝이다.

동복은 형태에서 보면 깊은 바리에서 어깨가 강조되는 것으로 변한다. 따라서 한반도 내에서 출토된 동복은 김해 대성동 29호분이 앞서고, 김해 대성동 47호분, 김해 양동리 235호분, 숭실대학교 소장품, 그리고 가장 뒤의 것이 평양박물관 소장품이다.

의의 및 평가

한반도 내에서 동복이 가장 먼저 출현하는 곳은 낙동강 하류의 김해 지역이다. 이곳은 삼한시대에는 구야국, 삼국시대에는 금관가야의 중심지였다. 금관가야는 삼한시대부터 이어온 철을 기반으로 하는 국제 교류를 통하여 한식(漢式) 유물과 함께 북방식 유물들을 수입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유물 중 하나가 동복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흉노고고학개론』(중앙문화재연구원, 진인진, 2018)
潘玲, 『中国北方晩期鍑硏究』(科学出版社, 2015)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낙랑유물』(숭실대학교한국기독교박물관, 2013)
草原考古硏究会, 『鍑の硏究 -ユ-ラシア草原の祭器 · 什器-』(雄山閣, 2011)
『五女山城』(辽宁省文物考古研究所, 文物出版社, 2004)
신경철, 김재우, 『김해대성동고분군Ⅰ』(경성대학교박물관, 2000)
임효택, 곽동철, 『김해양동리고분문화』(동의대학교박물관, 2000)
『渾江市文物志』(吉林市文物志編委会, 1984)
『集安県文物志』(吉林市文物志編委会, 1984)

논문

이해련, 「흉노 · 선비 동복의 특징과 변천」(『고고광장』 14, 부산고고학연구회, 2014)
이해련, 「우리나라 출토 銅鍑에 대하여」(『부산박물관연구논집』 10, 2003)
梅原末治, 藤田亮策, 「四五 平壤附近出土銅鉢 · 銅壺」(『朝鮮古文化宗鑑一 · 二卷』, 1947)
주석
주1

중국의 이민족인 오호(五胡) 가운데 진(秦)나라ㆍ한(漢)나라 때에 몽골고원에서 활약하던 기마 민족. 기원전 3세기 말에, 묵돌 선우가 모든 부족을 통일하여 북아시아 최초의 유목 국가를 건설하고, 최성기(最盛期)를 맞이하였으나, 한나라 무제의 잦은 침공으로 쇠약해져, 1세기경 남북으로 분열되었다.    우리말샘

주2

중국의 이민족인 오호(五胡) 가운데 고대 북아시아에 살던, 몽골족과 퉁구스족의 피가 섞인 유목 민족. 중국 전국 시대부터 싱안링(興安嶺)의 동쪽에서 유목 생활을 하였으며, 후한의 화제(和帝) 때에는 흉노를 대신하여 몽골 지방을 차지하였고, 위나라 때부터 점차 중국 본토로 들어와 삼국 시대에는 모용씨(慕容氏)ㆍ우문씨(宇文氏)ㆍ탁발씨(拓跋氏) 따위로 분열되었는데, 특히 탁발씨는 북위를 세우기도 하였으나 당나라ㆍ송나라 이후에는 한족(漢族)에 동화되었다.    우리말샘

주3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환런현(桓仁縣) 오녀산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성곽. 환런현에서 동북쪽으로 8km 떨어진 곳으로, 고구려의 수도였던 집안과 서쪽 지방을 잇는 곳에 있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이해련((前)복천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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