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4.8m. 199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본래 무릉계곡 어귀에 들어서기 전 평지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1977년 삼화사 일대가 쌍용양회 동해공장의 채광권 내에 들어가게 되자 무릉계곡 안에 있는 두타산(頭陀山) 기슭의 현재 위치로 옮기게 된 것이다.
642년(선덕여왕 11)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오대산에 들어가 관음보살의 성적(聖蹟)을 찾던 중 두타산에 이르러 절을 지은 것이 삼화사의 창건이라 하는데 당시의 유적 · 유물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864년(경문왕 4) 범일국사가 절을 다시 짓고 삼공암(三公庵)이라 하였으며 고려 태조 때 삼화사로 개칭하였다는 것이다.
이 삼층석탑은 삼화사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질 당시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석축 위의 좁은 화단 서쪽에 세워졌던 것을 1997년 5월 초순에 현재의 자리에 옮겨 세웠다.
이 석탑은 평면 구도가 정사각형으로 기단부 위에 탑신부를 구성하고 정상에 상륜부를 장식한 일반형이다. 4매의 장대석으로 짜여진 지대석 위에 하층기단 면석을 놓았는데 이 면석도 4매석이다. 각 면에는 하단에 굽이 돌려지고 양 우주와 1탱주가 모각되었다. 하층기단 갑석은 2매석으로 이루어졌는데 상면은 약간 경사지고 2단의 굄을 마련하여 상층기단을 받고 있다.
상층기단 면석은 4매석으로 짜여졌으며 각 면의 양 우주와 1탱주가 정연하다. 상층기단 갑석은 1매석으로 조성하였는데 윗면은 약간 경사지고 낮은 굄 2단을 마련하여 별석(別石)으로 조성한 탑신 굄돌 1매를 놓고 탑신부를 받고 있다. 탑신 굄돌은 밑면에 받침모양을 각출하여 반전형을 보이고 있으며 윗면에 낮은 2단의 굄을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고 있다.
초층탑신석은 1석으로 이루어졌으며 각 면에 양 우주가 모각되었다. 초층옥개석은 1매석인데 밑면의 옥개받침이 4단이며 윗면의 탑신 굄대는 2단이다. 2 · 3층 탑신석도 1석씩으로 조성하여 양 우주가 정연하며 2 · 3층 옥개석도 1매석씩으로 조성하였는데 옥개받침이 4단씩이고 윗면의 탑신 굄은 2단씩이다. 낙수면이 평박하고 전각의 반전이 뚜렷하여 경쾌한 탑신부를 이루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이 놓여 있고 그 위에 길쭉한 찰주가 꽂혀 있으며 다른 석재는 없으나 정상 가까이의 보주는 뚜렷하다.
이 석탑은 기단부와 탑신부, 상륜부까지 전체의 규모를 잘 알 수 있는데, 기단부의 구성과 특히 탑신부에서 탑신 굄대를 별석으로 조성하여 끼운 점, 그리고 각 탑신석과 옥개석의 조성양식과 수법 등 전체적으로 보아 균정하고 단아한 작품인 점에서 건립 연대는 신라 하대인 9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이 연대는 삼화사의 중창기인 경문왕대와 같은 때인 것이다. 따라서 동해안 지역에서는 희귀한 신라석탑으로서 귀중한 불탑(佛塔)으로 주목된다.
찰주까지의 높이는 4.8m이나 상륜부재가 철제보주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어 복발까지의 높이는 3.6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