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 )

목차
관련 정보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후면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후면
건축
유적
문화재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 비로암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4대 민애왕을 위해 건립한 불탑. 보물.
목차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 비로암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4대 민애왕을 위해 건립한 불탑. 보물.
내용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71m. 비로암의 중심 건물인 대적광전의 앞뜰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나직한 흙단 위에 2층의 받침을 세우고 그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전형적신 신라 석탑이다. 1967년에 해체 복원 공사를 하였다.

아래층 받침돌은 4장의 길고 큰 돌로 구성되었는데, 1장의 돌로 이루어진 각 면에는 바닥돌과 받침돌 면석(面石), 그리고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기둥이 새겨져 있다. 아래층 받침돌의 덮개돌은 네모난 4장의 널돌을 붙여서 덮었으며, 윗면에는 위아래로 굴곡을 만들어 마치 별개의 널돌을 굄돌로 끼운 듯이 표현하였다. 윗층 받침돌의 면석은 4장의 널돌로 조성하였으며,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기둥을 돋을새김하였다. 윗층 받침돌의 덮개돌은 2장의 널돌로 덮었으며, 윗면에는 아래층 받침돌과 같은 모습으로 위아래를 굴곡으로 깎아 굄돌을 마련하여 몸돌을 받치게 하였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조성하였다. 몸돌의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으며, 위로 올라가면서 약간의 체감(遞減)을 나타내도록 하였다. 지붕돌은 윗면 가운데 부분에 굄을 새겼고, 추녀는 전각(轉角)까지 직선을 이루게 하였으며, 아랫면에는 4단의 받침을 새기고서 가장자리에 가는 홈을 파서 돌렸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 위에 복발(覆鉢)·보주(寶珠) 등이 남아 있다.

이 석탑은 규모는 작지만 각 부분의 비례가 신라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따른 아름다운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1층 몸돌 아래 부분과 아래층 받침돌의 덮개돌에 굄돌을 별개의 돌로 끼워넣듯이 조각한 수법은 특이한 모습으로, 대체로 신라 하대에 나타나는 양식이다.

이 석탑은 1966년에 사리구(舍利具)가 도난되었지만 다행히 중요한 유물만은 수습되었다. 사리를 담은 납석제(蠟石製) 항아리에 글자가 새겨져 있어서, 이 석탑이 863년(경문왕 3)에 민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경상북도의) 석탑』 1~5(국립문화재연구소, 2007·2009·2011)
『文化財大觀 경주시(경상북도) 』(慶州市, 2004)
『한국의 탐구』-한국의 석조미술(정영호, 서울대출판부, 1998)
『신라석탑연구』(장충식, 일지사, 1987)
『문화재대관』4-보물 2(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국보』6-탑파(진홍섭 편, 예경산업사, 1983)
『한국미술전집』6-석탑(황수영 편, 동화출판공사, 1974)
『한국 탑파의 연구』(고유섭, 을유문화사, 1954)
「新羅 景文王代 桐華寺 毘盧庵 佛敎美術品의 특징과 의의」(서지민, 『고문화』 91, 2018)
「八公山 桐華寺의 창건시기와 伽藍의 변화과정 고찰」(오세덕, 『佛敎學報』79, 2017)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금동사리외함 연구」(노재은,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신라민애대왕석탑기」(황수영,『사학지』3, 1969)
집필자
윤용진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