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 성하리 고분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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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성하리 고분군 전경
달성 성하리 고분군 전경
선사문화
유적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돌덧널무덤 · 구덩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이칭
이칭
삼장군묘(三將軍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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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돌덧널무덤 · 구덩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내용

고분의 분포상태는 면의 북동쪽과 북쪽·서쪽에 대소 집단을 이루며 흩어져 있다.

그 중 가장 큰 집단묘를 형성한 지역이 북동쪽의 쌍계리 뒷산의 고분군이다. 이곳에는 거대한 고분과 작은 석곽분(石槨墳)까지 수백 기의 고분이 있다.

특히, ‘삼장군묘(三將軍墓)’라 불리는 고분은 바닥지름이 30m 이상이고 높이도 5m가 넘는 원분으로, 내부는 거대한 장방형(長方形) 구덩식돌방[竪穴石室]으로 되어 있다.

정식 발굴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다양한 토기와 철제무기류가 대량으로 출토되었다고 하나 알 길이 없다. 또 이 일대에서는 오리형토기[鴨形土器]와 수레형잔[車輪土器] 등 이형토기(異形土器)가 많이 출토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다음으로 많은 집단묘는 면의 북서쪽 구릉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데, 이 곳은 현재 상수도탱크가 있는 구릉 일대이다. 1920년대만 하더라도 외형이 뚜렷한 고분이 30여 기 유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10여 기만이 남아 있지만 모두 도굴되어 파괴된 상태이다.

또 그 다음으로 고분군을 이룬 곳이 면의 서쪽인 성하리로 낙동강변에 있는 구릉이다. 지금은 대구와 마산을 잇는 고속도로상의 휴게소로 조성된 구릉이다.

192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3, 4기의 큰 고분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고, 간혹 봉토가 유실된 돌널무덤[石槨墓]이 발견되는 정도이다.

1917년에 도굴된 이 곳 고분의 하나를 조사한 바 있다. 내부구조는 널길[羨道]이 있는 돌방이었다. 돌방과 널길은 할석(割石)으로 옆벽을 쌓고 천장은 큼직한 판석 3개를 걸쳐 돌방과 널길의 일부를 덮었다.

돌방 옆벽은 아래쪽을 수직으로 하고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안으로 기울여 좁아지게 만들었다. 규모를 보면, 바닥면에서 널방[玄室]은 길이 3.2m, 너비 2.3m이고, 높이 1.7m이고, 널길은 길이 1.2m, 너비 0.7m, 높이 1.7m이다.

의의와 평가

조사 당시에 이미 도굴된 고분이라 유물의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당시 조사자들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참고문헌

『大正六年度古蹟調査報告』(朝鮮總督府,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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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윤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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