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삼(全世三)이 만년에 몇 칸의 초가집을 짓고 세속을 등지고 오직 아들 오형제의 교육에만 힘쓰던 곳이다. 《용궁전씨세보》에 의하면 전세삼이 지은 정자가 학위당(學偉堂)이었다고 한다.
이 학위당이 발전하여 사학의 요람이 되었고, 그 뒤 개화와 함께 창동의숙(彰東義塾)으로 개칭하고 1880년(고종 17)에 중수하였는데, 이것이 지보초등학교(知保初等學校)의 전신이 되었다. 1972년 용궁전씨 문중에서 중수하여 만산서재(晩山書齋)라고 하다가 다시 만의서재로 개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