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서원은 1818년(순조 18) 사림에서 박성양(朴成陽)을 제향하는 사당을 건립한 데서 비롯되었다. 박성양은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스승 정몽주가 이성계세력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고향인 경상도 의성으로 낙향하여 은거하면서 오로지 성리학에만 정수(精修)하였다. 1851년(철종 2)에 ‘명곡(明谷)’이라고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05년에 서원의 유지에 단을 세우고, 1926년 묘우(廟宇)를 중건하였고 이때 명곡서당으로 개칭하였다. 1975년에 도내 유림이 뜻을 모아 서원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경덕사(景德祠), 8칸의 명교당(明敎堂),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6칸의 주소(廚所) 등으로 되어 있다. 묘우(廟宇)인 경덕사에는 박성양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된 본당 명교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강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동재는 향도재(向道齎)인데 제원(祭員)들의 숙소로, 서재는 강의재(講義齎)인데 유생들이 기거하면서 공부하는 장소로 사용되어왔으며, 주소는 서원을 관리하는 고자(庫子)가 사용하고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2월 하정(下丁: 마지막 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다. 유물로는 박성양의 책판 80여장 등이 소장되어 있고 재산은 전답 5,000여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