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선보(善甫), 호는 중심당(中心堂) 또는 두암(蠹庵). 할아버지는 모성경(牟聖耕)이고, 아버지는 제주판관(濟州判官) 모경관(牟景觀)이며, 어머니는 현풍곽씨(玄風郭氏)로 곽중태(郭重泰)의 딸이다. 가학(家學)을 통하여 학문을 닦았다.
1789년(정조 13)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경양찰방(景陽察訪)에 임명된 뒤 1792년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예조좌랑(禮曹佐郎)을 지냈고, 1793년 황해도사(黃海都事)·훈련주부(訓鍊主簿)를 거쳐 1803년 보시관(補試官)에 임명되었고, 1806년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온릉영(溫陵令)을 지냈다.
1811년 사헌부장령에 재임시에는 민간에 끼치는 폐해 및 과거시험 폐단 구제에 관한 상소문을 올렸다. 그 뒤 1812년 예조좌랑, 1813년 사헌부장령과 전주의 복시관(覆試官)을 역임하였으며, 1814년 통례원좌통례(通禮院左通禮)·대정현감(大靜縣監)을 지내면서 청백한 관리생활로 송덕비(頌德碑)가 세워졌다. 1817년 관직에서 물러나 자연과 경전(經傳) 속에 묻혀 지냈다.
저서로는『중심당유고(中心堂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