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죽지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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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 모죽지랑가
삼국유사 / 모죽지랑가
고전시가
작품
신라 효소왕 때 득오(得烏)가 지은 8구체 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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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라 효소왕 때 득오(得烏)가 지은 8구체 향가.
내용

득오가 죽지랑(竹旨郎)을 사모하여 지었다는 노래. 『삼국유사(三國遺事)』권2 효소왕대 죽지랑조(孝昭王代 竹旨郎條)에 관련설화와 함께 가사가 전한다. 이 노래의 이름은 양주동(梁柱東)이 ‘모죽지랑가’라고 칭한 이외에도 오구라(小倉進平)는 ‘득오곡모랑가(得烏谷慕郎歌)’라 하였고, 김선기(金善琪)는 ‘다기마로 노래’, 김사엽(金思燁)은 ‘대마로가’ 혹은 ‘죽지랑가’ 등으로 불렀다.

삼국을 통일한 후 화랑도가 세력을 잃어가는 과정을 암시적으로 드러내보여 주는 역사적으로도 의미있는 노래이다. 노래 제목은 『삼국유사』 본문의 기록에 따라 뒤에 붙인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이 노래를 짓게 된 동기를 설명해 주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죽지랑의 무리에 득오곡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매일 죽지랑을 모시다가 갑자기 열흘 가까이 나오지 않으므로 죽지랑이 그의 어미를 불러 연유를 물었다. 이에 그의 어미가 모량리(牟梁里)의 익선 아간(益宣阿干)이 부산성의 창고지기로 급히 임명하여, 미처 인사도 못 여쭙고 떠나게 되었음을 고하였다.

죽지랑이 낭도 137인을 거느리고 떡과 술을 가지고 득오곡을 위로하러 가서는 밭에서 일하고 있는 득오곡을 불러 떡과 술을 먹이고 익선에게 휴가를 주어 함께 돌아갈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청하였으나 익선은 굳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 사리(使吏) 간진(侃珍)이 세금으로 곡식 30석을 거두어 성중으로 돌아가다가 낭의 선비를 아끼는 인품을 아름답게 보고, 익선의 융통성 없음을 못마땅하게 여겨 곡식 30석을 주면서 낭의 청을 허락해줄 것을 청하였지만, 그래도 듣지 않으므로 다시 말과 안장까지 주자 그때서야 득오곡을 놓아 주었다.

이러한 후의를 입은 득오곡이 죽지랑을 사모해서 이 노래를 지었다는 것이다. 『삼국유사』는 이러한 산문 기록의 아래 「모죽지랑가」의 가사를 수록하고 있다.

향찰로 표기된 원문과 그 해독 및 현대어 풀이는 다음과 같다.

① 원문

去隱春皆林米 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貌史年數就音墮支行齊 目煙廻於尸七史伊衣 逢烏支惡知作乎下是 郞也 慕理尸心未 行乎尸道尸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

② 해독

“간봄 그리매/모든 것ᅀᅡ 우리 시름/아ᄅᆞᆷ 나토샤온 즈ᅀᅵ/살쯈디니져/눈 돌칠 ᄉᆞ이예/맞보ᄋᆞᆸ디지ᅀᅩ리/郎이야 그릴 ᄆᆞᅀᆞᄆᆡ녀올 길/다봊ᄆᆞᅀᆞᆯᄒᆡ 잘 밤 이시리(간 봄 그리매/모든것사 설이 시름하는데/아름다움 나타내신 얼굴이/주름살을 지니려 하옵내다/눈 돌이킬 사이에나마/만나뵙도록(기회를)지으리이다. /郎이여, 그릴 마음의 녀올 길이/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이 있으리이까.)”(양주동 해독)

③ 현대어 풀이

간 봄 그리워함에 모든 것이 서러워 시름하는데 아름다움을 나타내신 얼굴이 주름살을 지으려 하옵내다. 눈 돌이킬 사이에나마 만나뵙도록 하리이다. 낭이여 그리운 마음의 가는 길이 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이 있으리이까. (최철 풀이)

해독상의 성과를 보면 양주동의 해독은 15세기의 음가를 중심으로 해석하였는데, 신라 시대의 음가가 과연 15세기의 음가와 동일할 것인가에 대한 이견이 제시된 바 있다. 이러한 견해를 대변하는 해독으로는 홍기문과 정열모의 연구를 들 수 있다. 홍기문은 신라어의 음가에 최대한으로 접근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특이하게 해독한 바 있다.

그리고 김완진은 네 가지 원칙을 세워서 작품을 해독한 특징이 있다. 일자 일음의 원리, 훈수종음의 원리, 맥락 일치의 기준, 율조의 기준 등을 중심으로 작품을 해독하였다.

양주동과 김완진의 해독상 차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皆林米’에 대한 해독에서 양주동은 ‘그리워함에’로 하였고, 김완진은 오지 못하다로 하여 음역(音譯)과 훈역(訓譯)의 차이점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에 대해서는 양주동이 ‘아름다움 나타내신’으로 풀이한 반면, 김완진은 ‘殿閣을 밝히오신’으로 풀이해서 큰 차이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逢烏支惡知作乎下是’에 대해서도 양주동은 ‘만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해석한 반면, 김완진은 ‘만나보기를 어찌 이룰 것인가’로 해석하여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노래를 보면 지나간 봄을 그리며 시름에 젖고, 또 죽지랑의 아름답던 모습이 쇠함을 바라보는 득오곡의 낭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의 정서가 작품의 주된 정조를 형성하고 있다. 한때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하는 데 큰 공을 세웠고, 그 후 여러 대에 걸쳐 대신으로서 존경과 찬미를 한몸에 받았던 노화랑(老花郎)의 쇠잔한 모습을 안쓰러워하는 득오곡의 심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향한 변하지 않는 존경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작품의 제작시기에 대해서는 죽지랑의 생존시에 지어진 작품이라는 설과, 그의 사후에 그를 추모하여 지은 노래라는 설이 학계에 제기되어 있다. 전자에 따를 때 이 노래는 득오가 앞서 익선에게 끌려 가서이거나 그 일이 있은 뒤 낭을 사모하여 지은 노래가 되고, 후자의 경우 죽지랑이 죽은 뒤 그의 덕을 사모하여 추모 찬송한 추모가의 성격을 지닌다.

어떻든지 이 작품은 지난 날 위대하였던 노화랑 죽지랑이 일개 아간 벼슬의 익선에게 수모를 당할 정도로 그 위엄과 위의를 상실해 간 화랑도의 세력을 잃은 모습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향가의 문학적 해석』(최철,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0)
『신라가요의 연구』(박노준, 열화당, 1982)
『향가해독법 연구』(김완진,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0)
『향가해석』(홍기문, 1956)
『조선고가연구』(양주동, 박문서관, 1942)
「다기마로 노래」(김선기,『현대문학』 13-2,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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