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흥갑 ()

목차
관련 정보
평양성도 / 모흥갑판소리도
평양성도 / 모흥갑판소리도
국악
인물
조선후기 8명창 중 하나로 고동상성에 능했던 판소리의 명창.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경기도 안성 죽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후기 8명창 중 하나로 고동상성에 능했던 판소리의 명창.
내용

판소리 8명창 중의 한 사람이다. 출생지는 경기도 안성의 죽산(竹山) 혹은 진위(振威)라고 하며, 전라도 전주라고도 하여 확실하지 않다. 만년에 전주에서 살았다.

송흥록(宋興祿)의 후배로 ‘고동상성’이라 하여 높은 소리를 잘 질러내어 후세사람들이 ‘설상(雪上)에 진저리치듯’이라는 별명을 지어 불렀다.

고종으로부터 동지(同知)의 직을 제수받은 그가 평양감사의 초청으로 평양 연광정(練光亭)에서 소리를 할 때 그 소리가 10리 밖까지 들렸다 하며, 이때의 판소리도(圖)가 전해지고 있다.

「적벽가」와 「춘향가」를 잘 불렀고, 당시 「적벽가」로는 그를 당할 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의 더늠으로 전해지고 있는 「춘향가」‘이별가’ 중 ‘날 데려 가오’하는 대목은 높은 소리를 계속 질러내는 그의 특징적인 고동상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신재효(申在孝)도 「광대가(廣大歌)」에서 “모동지 흥갑이는 관산만리(關山萬里) 초목추성(草木秋聲) 청천만리(靑天萬里) 학(鶴)울음 시중성인(詩中聖人) 두자미(杜子美)”라 평하였는데 학의 울음소리가 바로 고동상성을 이른 것 같다.

특히, 이 대목을 강산제(岡山制)라고 하는데 박유전(朴裕全)의 강산제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의 강산제는 산조의 강산제와 음악적 특징이 일치하고 있다. 그는 말년에 이가 빠져 소리를 입술로 조정하여 불렀다.

이것이 그의 독특한 순음(脣音) 더늠으로 후대의 주덕기(朱德基)에 의해서 방창(倣唱)되어 세상에 퍼졌다.

참고문헌

『판소리소사』(박황, 신구문화사, 1976)
『조선창극사』(정노식, 조선일보사출판부, 1940)
「판소리 팔명창 음악론」(이보형, 『문화재』8, 문화재관리국, 1974)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