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경당일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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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순의 몽경당일사 중 권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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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문헌
조선후기 문신 서경순이 청나라에 다녀온 후에 작성한 견문록. 사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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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문신 서경순이 청나라에 다녀온 후에 작성한 견문록. 사행록.
내용

1권. 필사본. 이 책은 저자가 1855년(철종 6) 청나라 선종(宣宗)의 비(妃) 효정성황후(孝靜成皇后)의 죽음에 대한 진위진향사(陳慰進香使)를 따라 정사(正使) 서희순(徐熹淳)의 종사(從事)로 부사(副使) 조병항(趙秉恒), 서장관(書狀官) 신좌모(申左模)와 함께 청나라에 다녀온 기록이다.

종사라는 직책이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비장(裨將)이나 반당(伴倘)보다는 약간 높은 지위로 군관(軍官)과 비슷한 것으로 이해된다. 저자는 서희순의 삼종동생으로 생원시에 합격해 고산현감(高山縣監)을 지냈다.

이 책은 모두 5편으로 구성되었는데 서명(書名)·제목 뿐 아니라 본문도 난해한 부분이 많다. 이 책의 이름은 연행 기록으로는 아주 특이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자서(自序)에서, 사행을 가던 해 정월 보름날 밤 꿈에 북경 태학(太學)에 있는 석경을 보았는데 뜻하지 않게 북경에 가게 되어 붙인 이름이라고 하였다.

당시 조선이 1860년 이후 동양적 질서 속에서 벗어나 국제적 갈등 속으로 휘말려 들고 있는 때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 책에 이러한 국제 문제에 관심을 가질 만도 하다. 그런데 그런 면은 거의 보이지 않고 청나라의 발달된 문물에 대한 동경, 특히 이용후생(利用厚生)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편, 내정의 문란과 경제적 궁핍의 원인이 외환 때문이 아니라 세정(稅政)의 문란과 관리의 부패에 있다고 통탄하였다.

권두 서문은 사행의 목적, 자신이 따라가게 된 연유를 말하였다. 제1편은 마자인정기(馬訾靭征紀)라는 편명이 붙어 있다. 마자란 곧 압록강의 별칭으로 압록강까지의 여행기라는 뜻이다. 국경을 넘는 감회를 읊은 시와 연도의 풍경·고사(故事) 등을 적었으며,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많이 따랐다.

제2편은 오화연필(五花沿筆)이라는 편명을 붙였다. 오화성을 지나며 쓴 글이라는 뜻으로 북경에 도착할 때까지의 일기이다.

제3편은 일하잉묵(日下賸墨)이라는 편명이 붙어 있다. 잉묵이란 좋은 먹이라는 뜻이니 훌륭한 선비와 만나 필담하고 귀한 전적을 열람한 북경 유람 및 교우기(交友記)이다.

그가 만난 사람으로는 당시 산수화와 난초를 잘 그리는 주당(周棠)과 인물화의 대가 유동고(狃東皐), 조선에 사신으로 왔던 상서(尙書) 화사납(花沙納) 등이 있었다. 이 밖에 북경에 과거를 보러 온 방삭(方朔)과 그의 친구 이사분(李士芬)과는 며칠 사이에 친해져 시문과 학문을 논하였다.

제4편은 자금쇄술(紫禁瑣述)이라는 편명이 붙어 있다. 청나라의 궁성인 자금성에서 자질구레하게 기술한다는 뜻이다.

저자가 꿈에서 본 태학의 석경을 실제로 구경하고 꿈에서 본 대로 채옹(蔡邕)이 쓴 희평석경(熹平石經)이 아니라서 크게 실망하면서 석경에 대해 자세히 고증하고 석고문(石鼓文)을 몇 줄 인용하기도 하였다.

제5편은 옥하선진록(玉河旋軫錄)이라는 편명이 붙어 있다. 옥하란 북경 서북쪽에 있는 샘으로 북경에서의 회정기(回程記)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국역연행록선집』(민족문화추진회,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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