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 설화는 신라 제30대 왕인 문무왕에 관한 설화이다. 인물전설로 ‘호국룡설화’라고도 하는데 대체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이 죽자 동해안 대왕암에 수중 장사를 지냈다. 호국용이 되고자 한 염원대로 문무왕은 용이 되어 왜적의 침입 경로인 12섬을 차례로 쳤다. 그런데 동해의 마지막 섬인 울릉도는 수구맥이라 하여 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설화는 경주 일대에 전승되고 있으며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단편적으로 실려 있다. 설화의 주제는 용신신앙을 바탕으로 한 호국사상이지만 변이형의 주제는 일정하지 않다.
인물전설로, 문무왕이 죽어서 호국룡(護國龍)이 되고자 하였으므로 ‘호국룡설화’라고도 한다. 문무왕의 수중릉(水中陵)으로 알려진 대왕암(大王巖)과 신문왕이 선왕(先王)의 유언이 성취되길 기원한 감은사(感恩寺), 그리고 선왕의 득천(得天)을 지켜본 이견대(利見臺)가 있는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및 감포읍 대본리를 중심으로, 경주 일대에 널리 전승되고 있는 설화이다. 설화의 주제는 용신신앙을 바탕으로 한 호국사상(護國思想)이며, 구전 자료는 변이형에 따라서 그 주제가 일정하지 않다.
「문무왕설화」와 여기서 변이된 용설화를 포괄해서 ‘호국룡설화’라 일컫기도 하는데, 이는 왕이 스스로 용으로 변신하고자 하여 나라와 백성들을 위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다는 유형적 차원의 공통성을 지닌다. 이 때 호국룡으로 변신한 왕은 항상 문무왕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김부대왕(金傅大王)이나 다른 왕으로 바뀌어서 구전되는 자료도 많다. 그러나 문무왕이 등장하는 자료가 가장 원형에 가까운 것이므로, 문무왕을 중심으로 자료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삼국 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은 평소부터 호국룡이 되어서 왜적을 막고자 염원하여, 마침내 동해안의 대왕암에 묻어 줄 것을 유언하고 죽었다. 선왕의 유언에 따라 동해안의 대왕암에 수중 장사를 지낸 신문왕은 감은사를 지금의 문무대왕면 용당리에 짓고 선왕인 문무왕이 평소에 바라던 바와 같이 호국룡이 될 것을 기원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날 문무왕이 꿈에 나타나서 용이 되어 득천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신문왕은 선왕의 현몽(現夢)에 따라 지금의 감포읍 대본리 언덕에 이견대를 쌓고 호국룡의 득천을 지켜보았다. 과연 문무왕이 용으로 변신하여 득천하면서 왜적의 침입 경로가 되는 동해의 열두 섬을 차례로 쳐 버렸다. 동해의 마지막 섬인 울릉도를 치려고 하였더니 하늘의 옥황상제가 울릉도는 조선의 수구맥이라고 하므로 치지 않았다. 지금도 바닷물 밑으로 호국룡이 쳐버린 열두 섬의 흔적이 보인다.
이 설화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단편적으로 실려 있으나, 호국룡이 되는 과정 및 호국룡이 되어서 구체적으로 행한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구전 자료에는 호국룡으로의 변신 과정과 왕이 용으로 변신하여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수호한 구체적인 행적이 나타난다. 대왕암이 있는 대본리 일대에서는 문무왕과 신문왕이 함께 등장하고, 이견대와 감은사도 아울러 이야기된다.
그러나 영덕군 영해면 대진리에서 구전되는 자료는 문무왕이 김부대왕으로 바뀌어 등장하며, 왕이 자력으로 득천하는 것이 아니라 유금(有琴)이라는 어린아이가 용이라고 함으로써 득천하게 되고, 유금에게 그 보답으로 큰 들을 물려준다는 것이다. 한편, 경주시 안강읍 일대에서 구전되는 것은 김부대왕이 용이 되어 득천하긴 하지만, 동해의 열두 섬을 치고 왜적을 막았다는 내용은 없다. 처음부터 형산강(兄山江)을 막고 있는 산을 쳐서 물길을 트고 넓은 들을 만드는 것이 소원이었던 것이다. 유금의 도움으로 득천하고 들을 만들어 유금의 소유로 한 것은 대진리의 자료와 같다. 자료가 이렇게 세 갈래로 전승되는 이유는 전승 지역의 자연환경 및 전승자들의 의식, 그리고 역사적 변모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설화에 따라서 호국의 주체가 왕가(王家) 중심에서 점차 백성 중심으로 변모되는가 하면, 지역에 따라 호국신(護國神) 또는 농업신(農業神)으로서 용이 인식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문무왕설화」는 무열왕계의 왕가설화에서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민중의 설화로 발전되는 과정에 있으며, 주권에 대한 백성들의 각성된 의식과 호국룡이 되고자 하는 왕의 의지를 통해서 왜적과 자연에 대결하는 자력적 신령관(自力的神靈觀)이 두드러져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