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일민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정의부 군사훈련주임, 상해교민단장, 항일장사후원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문일민(文逸民), 문희석(文熙錫)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4년(고종 31)
사망 연도
1968년
출생지
평안남도 강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정의부 군사훈련주임, 상해교민단장, 항일장사후원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일명 문일민(文逸民)·문희석(文熙錫). 평안남도 강서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에 참가하였으며, 같은 해 7월 남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서 군사훈련을 받았고, 12월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에 가입하였다.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이탁이 대한청년단연합회와 협력해 조직한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이 미국 국회의원단이 한국을 방문하는 8월 국내 일제관청을 폭파하고 일제요인을 암살하여 조선인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세계에 과시하기로 하고 행동대를 국내에 파견하기로 하자, 여기에 참여하였다.

행동대는 평양에 잠입하는 과정에서 7월 30일 평안남도 안주에서 경찰을 1명 사살하였다. 8월 2일에는 평안남도 경찰부의 장벽 일부를 파손시켰다. 무사히 상하이[上海]로 탈출하였고, 일제는 궐석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언도하였다.

1924년 윈난육군군관학교[雲南陸軍軍官學校]에서 군사학을 전공하고, 1925년 상해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의원, 1926년 정의부(正義府) 군사훈련주임, 1933년 상해교민단장, 1937년 항일장사후원회(抗日將士後援會) 상무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항일투쟁에 종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독립운동사』 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집필자
박현서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