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문일민(文逸民)·문희석(文熙錫). 평안남도 강서 출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에 참가하였으며, 같은 해 7월 남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서 군사훈련을 받았고, 12월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에 가입하였다.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이탁이 대한청년단연합회와 협력해 조직한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이 미국 국회의원단이 한국을 방문하는 8월 국내 일제관청을 폭파하고 일제요인을 암살하여 조선인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세계에 과시하기로 하고 행동대를 국내에 파견하기로 하자, 여기에 참여하였다.
행동대는 평양에 잠입하는 과정에서 7월 30일 평안남도 안주에서 경찰을 1명 사살하였다. 8월 2일에는 평안남도 경찰부의 장벽 일부를 파손시켰다. 무사히 상하이[上海]로 탈출하였고, 일제는 궐석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언도하였다.
1924년 윈난육군군관학교[雲南陸軍軍官學校]에서 군사학을 전공하고, 1925년 상해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의원, 1926년 정의부(正義府) 군사훈련주임, 1933년 상해교민단장, 1937년 항일장사후원회(抗日將士後援會) 상무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항일투쟁에 종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