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1967. 황해도 사리원 출생. 사리원 색동리에서 살다가 월남하여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동에서 살았다. 평양숭실중학교를 졸업하였고 이왕직(李王職) 무용부 2년을 수료하였다. 인천에서 국악원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7세 때부터 애기탈춤을 배우기 시작하여 이윤화 · 박천만에게 「봉산탈춤」을 배워 사자머리 · 마부 · 놀량창, 장구 및 북 반주를 하였다. 서울에서 「봉산탈춤」 연희자 김진옥(金振玉)과 「해주탈춤」의 이근성(李根成) · 양소운(梁蘇云)과 합류하여 「봉산탈춤」을 보존, 전수하였다.
1958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내각수반상을 수상하였다. 1967년 6월에 「봉산탈춤」놀량 창과 사자마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정재천(鄭在千)과 최창주(崔昌注)를 후계자로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