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는 유치환 시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그의 두 번째 시집 『생명의 서(書)』(행문사(行文社), 1947)에 실려 있다. 유치환은 이 시가 실린 시집 『생명의 서』의 서문에서 “여기에 모은 것은 첫 시집 이후 해방 전까지 된 것들로 그 중에도 제2부의 것은 내가 주1로 도망하여 가서 살면서(진정 도망입니다) 떠날 새 없이 허무 절망한 그곳 광야에 위협을 당하며 배설한 것들”이라고 밝힌다. 이로 보아 제1부에 실린 시 「바위」는 유치환이 첫 시집 『청마시초』(청색지사, 1939) 발간 이후 1940년 만주로 이주하여 1945년 귀국하기 전 시기에 창작된 시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연 구분이 없고 12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치환은 1938년 중일 주2 발발 이후 점차 악화되어 가는 식민지 조선의 상황, 친일에의 압력을 피해 만주행을 결심한다. 그러나 이 시집의 서문에서 밝힌 대로, 그곳에서도 자신이 “도망”하듯 이곳을 왔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며 여전히 안온한 공간이 아닌 “광야”에서 “허무”와 “절망”에 빠지게 된다.
유치환의 시에서 등장하는 자연물은 세계의 모든 존재를 고통스럽게 만든 근대 사상과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생명의 본원적 순수성을 간직한 시공간으로 볼 수 있다. 이 시에서 ‘바위’는 “애련”과 “희로”에 물들고 흔들리는 자신, 인간의 나약함과는 대척적인 성질을 지닌 강건한 존재로, 고통스런 인간의 시간을 하찮은 것으로 무화시키는 영원성을 지닌 존재로 표상된다. 인간이 집착하는 “생명도 망각하고” 함부로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누군가의 폭력에 “두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묵묵히 견디며 인간의 역사적 현실을 초월해 간다. 이는 식민지 현실에서 도덕적 주3에 고통스러워 했던 시인이 희구했던 존재성으로 “드디어” 그 “생명도 망각”한다는 구절은, “비와 바람”으로 상징되는 현실적 고난의 기원인 세계의 모든 인식과 제도를 무화시키는 ‘아나키한’ 인식의 궁극을 표현한 것이다.
이 시 「바위」는 현실적으로는 저항하지 못한 주체의 죄의식을 드러냄과 동시에 대척적인 존재인 바위의 형상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당대 역사적 현실의 폭력성을 폭로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유치환 초기 시세계의 사상적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해 낸 작품으로 식민지 말기 시문학 정신사를 풍부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