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백우(伯牛). 할아버지는 좌의정 박은(朴訔)이고, 아버지는 금천군(錦川君) 박강(朴薑)이다. 나주 사람으로 정붕(鄭鵬)·박영(朴英) 등과 교유, 학문을 논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교수청(校讐廳)의 사자생(寫字生)으로 있었다. 1468년(예종 즉위) 세조 국상 때 세조의 복을 빌기 위한 사경(寫經)에 참여한 공으로 품계가 오르는 포상을 받았다. 1477년(성종 8) 사경(寫經) 차 봉선사에 다녀오던 길에 영응대군(永膺大君)의 부인 송씨(宋氏)가 중 학조(學祖)와 사통했다는 방문이 동대문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이를 김일손(金馹孫)에게 전했는데,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김일손의 자백에서 이 내용이 나와 박경도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1507년 공조참의(工曹參議) 유숭조(柳崇祖), 호군(護軍) 심정(沈貞)·남곤(南袞) 등이 서얼(庶孽) 박경 일당이 유자광(柳子光)·박원종(朴元宗) 등 왕의 측근을 제거하고 정미수(鄭眉壽)를 영의정으로, 김감(金勘)을 병조판서로 추대하고자 모의한다고 밀고하여 옥사가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박경과 김공저(金公著)는 대신(大臣)을 모해하고 조정을 어지럽혔다는 죄로 참형에 처하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