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낙종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일본부 책임자와 8·15광복 후 조선정판사 사장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9년(고종 36)
사망 연도
1950년
출생지
경상남도 사천
주요 경력
사상운동 발행인|대중신문 발행인|조선공산당 일본부 책임비서|조선정판사 사장|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
관련 사건
제3차 조선공산당사건|조선정판사위폐사건
내용 요약

박낙종은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일본부 책임자와 8·15광복 후 조선정판사 사장을 지낸 사회주의운동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일월회 기관지인 『사상운동』의 발행인 겸 편집인, 1926년 『대중신문』의 발행인을 역임하였다. 1927년 조선공산당 일본부 책임비서로 선임되었다. 1928년 ‘제3차 조선공산당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1934년 1월 만기 출옥하였다.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체포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정의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일본부 책임자와 8·15광복 후 조선정판사 사장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1899년 경상남도 사천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동(中東)학교에서 2년간 수학하였다. 1923년 봄 일본 도쿄에 있는 세이소쿠〔正則〕영어학교에서 1년간 수학하였다. 1924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전문부 정치경제과에 입학하여 1927년 졸업하였다.

주요 활동

대학 재학 중 구월회(九月會)를 조직하였고, 사상단체 북성회(北星會)일월회(一月會)에 가입하였다. 1925년 1월 김세연(金世淵), 하필원(河弼源) 등과 함께 조선문 인쇄도 가능한 ‘동성사(同聲史)’ 인쇄소를 세워 일월회의 각종 문헌 및 사회주의 관련 출판물을 인쇄 발간하였다. 11월 일월회 편집부원이 되었고, 이후 일월회 기관지인 『사상운동(思想運動)』의 발행인 겸 편집인이 되었다. 1926년 4월 『 대중신문(大衆新聞)』 발기인에 참여하였고, 이후 발행인이 되었다.

1926년 12월 안광천(安光泉) 등과 귀국하여 조선공산당 제2차 대회에 재일조선인 대표로 출석하였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1927년 5월, 최익한(崔益翰)과 함께 조선공산당 일본부를 조직하고 책임비서로 선임되었다. 11월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유아사 쿠라헤이〔湯淺倉平〕가 도쿄를 방문하자, 신간회 도쿄지회 대표, 재일본 조선노동연맹 대표 등과 함께 조선공산당 사건의 고문 사건을 항의하였다.

1928년 2월 ‘제3차 조선공산당사건’이 일어나자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1930년 8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복역하다가 1933년 대전형무소로 이감되었고, 1934년 1월 만기 출옥하였다.

1945년 9월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으로 선임되었고,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다. 김광수(金光洙) · 송언필(宋彦弼) 등과 인쇄 시설을 갖춘 ‘근택인쇄소’ 빌딩을 일본인에게 저가에 인수하였다. 이후 ‘근택인쇄소’를 ‘조선정판사(朝鮮精版社)’로 개칭하고 사장에 취임하였으며, 좌파 관련 각종 문헌을 인쇄 발간하였다. 근택빌딩에는 조선공산당 본부와 『해방일보사』 등이 입주하였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에 선임되었다. 5월 조선정판사위폐사건으로 경찰에 검거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목포형무소에 수감 중 1950년 6 · 25전쟁이 일어난 직후 총살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임성욱,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연구』(신서원, 2019)
이준식, 『조선공산당 성립과 활동』(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강만길·성대경 편,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논문

박종린, 「1920년대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일월회」(『한국근현대사연구』 40, 2007)
박종린, 「1920년대 통일조선공산당의 결성과정」(『한국사연구』 102, 1998)

판결문

「ML당사건 판결전문」(『동아일보』., 1930. 9. 7.)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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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미디어 (1)
집필자
홍종욱(서울대학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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