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 미상. 전라북도 고부군(古阜郡)출신. 당시의 명창인 최승학(崔昇鶴)과는 동서간이다.
당시 8명창으로 꼽히던 주덕기(朱德基)에게 판소리를 잠깐 배우다가 명창 가운데 제일의 가왕(歌王)으로 치던 송흥록(宋興祿)에게 10여 년간 판소리를 배우고 나서 수년간 수련 끝에 전주대사습에 나가서 소리한 뒤부터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송흥록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명창으로 꼽힐 뿐만 아니라 순조 때의 8명창 이후로 첫손 꼽히는 명창으로 흥선대원군의 총애를 받아 선달(先達)이 제수되었다.
그의 목소리는 양성(陽聲)으로 맑고 밝은 성음이며, 소리는 우조(羽調)를 주로 하여 짧고 진중하고 정대한 소리를 하였다고 한다. 진중한 아래 음역뿐만 아니라 매우 높은 음역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였고, 발림과 같은 것이 뛰어나 듣는 이로 하여금 심취하게 하였다 한다.
당시 그 앞에서 감히 소리로 겨룰 명창이 없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뛰어나지 않은 대목이 없으나, 특히 「춘향가」 가운데 ‘사랑가’ · 옥중가’와 「적벽가」 가운데 ‘화용도(華容道)’와 ‘장판교대전(長板橋大戰)’대목을 잘하였다.
그의 더늠 가운데 ‘옥중가’ 중의 ‘춘향의 몽유(夢遊)’대목이 송만갑(宋萬甲) · 정정렬(丁貞烈)에 의해서 방창(倣唱)하여 전하고, 「수궁가」 중의 ‘토끼화상 그리는 대목’은 그의 제자인 김찬업(金贊業)을 통해서 송만갑 · 전도성(全道成) · 신명학(申明鶴) 등에 의해서 전해지고 있다.
그의 다른 제자로는 고종 때의 명창인 오끗준 · 유공렬(劉公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