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제홍(霽鴻), 호는 운소자(雲巢子) 또는 천유자(天游子). 아버지는 박유형(朴有馨)이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한 번 글을 읽으면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장성한 뒤 채마밭을 경영하여 많은 재산을 모았으나, 큰 장대(莊臺)를 세우고 첩을 두며 친구들과 매일 술을 마시며 방탕한 생활을 하여 수년 만에 가산을 탕진하였다.
그러나 40세에 이르러 시 공부를 시작하여 고시(古詩) 수만 편을 외우고, 근체시(近體詩)에 능하였다. 박문규의 시는 청나라의 한림(翰林) 동문환(董文煥)으로부터 극찬을 받아, 그가 시를 잘 짓는다는 명성이 청나라에까지 떨치게 되었다.
1887년(고종 24) 개성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특명으로 병조참지에 등용되니, 이때 나이 83세였다. 이듬해 가선대부에 올랐다. 성격이 깨끗하고 허욕이 없었다.
후진에는 윤진우(尹鎭佑)·김재희(金載熙)·최중건(崔中建)·서창동(徐昌東) 등이 있다.
저서로는 『운소산방시초(雲巢山房詩草)』·『천유집고(天游集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