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만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조선전래동화집』, 「선구자」 등을 저술 · 작곡하였으며, 임시정부 선전부 선전위원, 광복군총사령부 선전과장 등을 역임한 문인 ·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4년
사망 연도
1981년
출생지
평안남도 안주
정의
일제강점기 때, 『조선전래동화집』, 「선구자」 등을 저술 · 작곡하였으며, 임시정부 선전부 선전위원, 광복군총사령부 선전과장 등을 역임한 문인 ·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평안남도 안주 출신. 1929년 진남포공립상공학교(鎭南浦公立商工學校) 3학년 재학시 광주학생운동에 가담하였다가 학교를 퇴학당하였고, 1937년에 『조선전래동화집(朝鮮傳來童話集)』 및 「선구자(先驅者)」등을 저술, 작곡하여 민족자주의식을 선양하다가 원고를 압수당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1940∼1942년에는 친일문인 이광수(李光洙)·최재서(崔載瑞) 등을 공격하는 유인물을 문인들에게 배포하다가 발각되어, 중국 산시성[山西省] 극난파(克難坡)로 망명하여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1943년 2월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하여 광복군가인 「압록강행진곡」을 작사하여 광복군의 사기를 앙양시켰으며, 미군전략정보처(OSS) 안에 한국인 공작반을 설치하도록 하는 데 큰 구실을 하기도 하였다.

1943년 11월 김구(金九)의 소명을 받고 충칭[重慶]에 도착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전부 선전위원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미군전략정보처 안의 한국인 공작반에 특파되어 일본군 안의 정세에 관한 정보수집업무와 광복군의 존재가치를 선전하여 미군으로 하여금 광복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한미합작훈련문제를 실현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1944년 5월 광복군총사령부 정훈처(政訓處) 선전과원(宣傳科員)으로 활약하였다. 1945년 6월 지대장 이범석(李範奭)을 도와 한미연합군사훈련 실시를 성공시키는 한편, 광복군총사령부 선전과장에 임명되어 활약하다가 광복을 맞았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에 건국포장이 수여되었고,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군의 전투』(신재홍, 민족문화협회, 1980)
『독립운동사』 6(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집필자
박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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