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반도에서 평양성으로 이어지는 교통로를 방어하는 성의 하나이다. 이 성에 관한 문헌기록은 고구려와 당(唐)과의 전쟁 기사에서 처음 나타난다.
645년(보장왕 4)에 당태종의 대규모 고구려 침략이 실패한 지 3년 후인 648년에 태종은 대규모 전함을 축조케 하는 한편, 설만철(薛萬徹)로 하여금 3만여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의 박작성을 공격케 하였다.
설만철이 압록강을 거슬러 박작성 남쪽 40여리 지점에 진영을 갖추자, 당시 박작성 성주(城主) 소부손(所夫孫)이 1만여명의 군대로 대항하여 성을 지켰으며, 고구려 장군 고문(高文)이 오골성(烏骨城)과 안시성(安市城)의 군대 3만여기를 거느리고 구원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박작성의 지리가 압록강 입구에서 100여리 떨어진 강 북안의 험준한 산을 끼고 있는 지세라는 기록으로 보아, 그 위치는 현재 중국 단동시(丹東市) 동북 15km 거리에 있는 호산산성(虎山山城)에 비정된다. 박작성 인근의 압록강 하구에는 고구려의 대행성(大行城)도 자리잡고 있어, 박작성과 서로 조응(照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