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진도 출신. 대금산조를 맨 먼저 지었다고 전한다. 집안 어른들로부터 젓대 시나위를 배운 뒤, 수련을 쌓아 신접한 경지에 이르러, 젓대를 불면 산새가 날아올 정도였다고 한다.
서울에 올라와 당시 민속악의 명인·명창들과 극장공연을 많이 하였다. 1933년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에 참가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 민속음악단체를 따라다니며 창극반주를 하는 등 많은 연주활동을 하였다.
후배 강백천(姜白川)과 친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각 대금산조를 짰는데, 그는 김창조(金昌祖) 가야금산조나 백낙준(白樂俊) 거문고산조의 경우와 같이 판소리에 나오는 우조(羽調)·계면조(界面調)·설렁제(드렁조) 등 여러 조를 도입하고, 그것을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 장단에 얹어서 체계를 세워 짰다.
대금산조는 지금까지 음악적으로 보아서 다른 분야의 어떤 산조에 비하여도 손색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산조는 한주환(韓周煥)에게 이어졌으며, 민족항일기에 그의 대금산조를 담은 음반이 지금도 남아 있다.
지방공연중에 죽어, 그의 소원대로 진도섬 길가 언덕에 묻혀, 오가는 행인들에게 무언의 위로를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