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장 ()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상감사원평군원공두표서」, 『동계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언승(彦承)
동계(東溪)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95년(선조 28)
사망 연도
1664년(현종 5)
본관
진원(珍原)
출생지
미상
정의
조선 후기에, 「상감사원평군원공두표서」, 『동계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진원(珍原), 자는 언승(彦承), 호는 동계(東溪). 아버지는 임진란 때 군공(軍功)으로 현감에 제수된 박근효(朴根孝)이며,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로 부교위(副校尉) 이유겸(李惟謙)의 딸이다. 일찍이 양친을 잃고 실심한 나머지 학문에 뜻을 두지 아니했다가 30세가 되어 배움이 없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맏형 박춘수(朴春秀)로부터 처음으로 수학하였고, 36세 때 은봉(隱峯) 안방준(安邦俊)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병자호란 때 안방준의 창의(倡義)에 참가하였으나 남한산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귀향하였다. 이 때 감사 원두표(元斗杓)에게 올린 「상감사원평군원공두표서(上監司原平君元公斗杓書)」의 글은 8조목으로 박춘장의 우국충정을 담고 있다.

1645년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52년(효종 3) 시폐구제를 위한 5조목의 「의상응지소(擬上應旨疏)」를 올렸으나 시행되지 못했다. 만년에 고향 용산(龍山) 아래에 정사를 짓고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으며, 1662년 대기근이 들자 민정을 실상대로 알리고 백성을 구제하는데 앞장서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박춘장은 평소 존군토적(尊君討賊) 존화양이(尊華攘夷)의 사상으로 일관된 생을 살았다. 대표적인 제자로 박진형(朴震亨)·박사헌(朴士憲) 등이 있으며 육현사(六賢祠)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동계유고(東溪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동계유고(東溪遺稿)』
『동국유현연원록(東國孺賢淵源錄)』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집필자
김성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