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여기(汝器). 호는 가소당(可笑堂). 백홍원(白弘源)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진주소씨(晉州蘇氏)로 소현문(蘇顯門)의 딸이다. 윤증(尹拯)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88년(숙종 14) 오도일(吳道一)과 함께 윤선거(尹宣擧)·윤증 부자를 비호하는 소를 올렸으나 가납되지 않았다. 재실(齋室)을 지어서 후학지도에 전념하였으며, 입교(立敎)·명륜(明倫)·흥학(興學)의 세 가지 조목을 세워 종족(宗族) 교육에 힘썼다.
1710년 학행으로 익위사(翊衛司)의 세마(洗馬)에 천거되었으나 반대파의 방해에 의해 좌절되었다. 평소 『소학』을 독실히 읽어서 문장보다는 궁행하는 데 힘썼다.
당쟁의 심화로 정치형태가 점차 어지러워짐을 염려하여 정치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등 초야에서도 끝내 정치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저서로 『가소당집(可笑堂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