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광사(法光寺)라고도 한다.
이 절은 신라 진평왕 때에 원효(元曉)가 왕명에 의해서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창건자를 원효로 볼 때는 진평왕대의 창건연대에 다소 무리가 생긴다. 창건 당시의 당우로는 대웅전과 2층 금당(金堂), 향화전(香火殿)·5층석탑 등 525칸이 있었다.
828년(흥덕왕 3) 7월 향조(香照)와 원적(元寂)이 재산을 희사하여 석가모니불사리탑을 세우고 사리 22과(顆)를 봉안하였으며, 846년(문성왕 8) 이 절로 탑을 옮겼다. 그 뒤 차츰 퇴락하였으나, 1746년(영조 22) 명옥(明玉) 등의 비구들이 5층탑을 중수하려고 헐었을 때 맨 아래층에 옥으로 만든 함속에 22과의 석가모니불 진신사리가 들어 있음을 발견하고, 다시 동함(銅函)을 만들어 사리를 탑 2층에 봉안하였으며, 그 해 가을에 탑 앞에다 법당을 짓고 금강계단(金剛戒壇)이라 하였다.
그 뒤 수십 년이 못 되어 전소되었다가, 1871년(고종 8) 규민(圭敏)이 폐허가 된 절을 중창하고자 하여 1876년부터 1886년까지 원통전(圓通殿)을 비롯하여 득수당(得水堂)·상운각(祥雲閣)·산령각(山靈閣)·독성각(獨聖閣) 등을 차례로 중건하였다. 1887년에는 5층중 3층만 남아 있던 사리탑을 중수하였는데, 보수 후 꿈속에서 탑의 후면에 서 있는 부처님을 보고 다음날 그 곳을 파보니 1750년에 건립한 사리탑중수기가 발견되었다.
그 뒤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52년 옛터 위에 새롭게 중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유물로는 석탑과 불상연화대좌·쌍귀부(雙龜趺) 등이 있다. 현재 4층까지만 남아 있는 사리석탑은 1968년에 도굴되었으며, 도굴 뒤 탑 속에서는 탑지석(塔誌石) 두 개가 발견되었다. 이는 신라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길이 10.8㎝, 두께 1.5㎝, 너비 4㎝의 석회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대좌와 옥개까지 갖춘 돌비석이다. ‘법광사석탑기’라고 제목을 붙인 이 유물은 법광사의 자세한 내력을 밝히고 있으며,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불상연화대좌는 지름 2.2m, 둘레 7.3m이며, 이 대좌 위에는 거대한 불상이 봉안되어 있었음을 추정하게 한다. 이밖에도 이 절에는 사리탑중수기, 당간지주(幢竿支柱), 수많은 주춧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