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법광사 석탑지는 2매인데, 입패(立牌) 모양이며 재질은 납석(蠟石)이다. 그 4면에 명문이 해서로 음각되어 있다.
제1석에는 법광사 석탑이 대화(大和) 2년 828년(흥덕왕 3) 비구 향조(香照)와 비구니 원적(圓寂)의 시주로 건립한 사실과 더불어, 846년(문성왕 8년) 9월에 옮겨 세우고 수리한 사실을 적어 놓았다. 846년 기록에서는 단월(檀越: 시주)이 대대로 정토에 왕생하고 문성왕의 복과 수명이 영원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또한 사리 22매를 넣었는데, 상좌 도흥(道興)이 일을 주관하였다. 그리고 단월로 성덕대왕전(成德大王典)의 향순(香純)임을 밝혀 놓았다.
성덕대왕은 추봉된 균정(均貞)으로 문성왕의 할아버지다. 따라서 성덕대왕전은 균정의 제향(祭享)을 관리하기 위한 원당전(願堂典)으로 여겨진다. 이 점에서 미루어 법광사는 늦어도 828년 탑을 조성하던 시기부터 균정 가계의 원당 사찰로서 역할을 하였으며, 그 자손인 신무왕·문성왕에 이르도록 계속되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제2석에는 조선시대에 두 차례에 걸쳐 석탑을 중수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1698년(숙종 24)에는 승려 명옥(明玉)과 담학(談學)이 주관하여 수리하였고, 1747년(영조 23)에 다시 수리하였으며,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대언(大言)이 기록하였다.
한편 탑지와 함께 발견된 납석제 사리호(舍利壺)가 있는데, 그 측면에 ‘불정존승다라니(佛頂尊勝陁羅尼)’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8~9세기 『불정존승다라니경』을 새긴 당주(幢柱)가 당(唐)나라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과 관련이 깊다. 22매의 사리는 여기에 봉안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절터만 남은 포항 법광사지는 2008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본 삼층석탑을 비롯 금당의 초석과 부도 귀부 등이 남아 있다. 지금의 법광사는 1936년 새로 조성한 사찰이다.